▲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8월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이균용 판사를 대법원장에 지명하자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장애인인권디딤돌상을 수상했고,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 인권 신장에 앞장선 신망 있는 법관”이라고 했다.

이 칭찬을 팩트체크한 언론은 한국일보였다. 그 결과 칭찬은 ‘엉터리’였다. 한국일보는 9월13일 8면에 “대통령실 이 후보자, 노동권 보호 강조, 실제론 산재 근로자 승소율 평균에 그쳐”라는 기사를 썼다.

한국일보는 대법원 판결문 제공 시스템 등에서 이 후보자가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서울고법 행정2부장 판사로 처리했던 산업재해 관련 79건의 판결문을 전수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분석 결과 “노동사건에서 이 후보자는 거의 정확히 ‘대한민국 법관의 평균’ 수준”이었다고 했다. 79건 중 노동자가 패소한 판결은 62건(78.5%)이었고, 노동자가 이긴 사건은 17건(21.5%)이었다.

대법원 발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15~2016년 산재 행정소송 1심에서 노동자가 이긴 건 전체 2천448건 중 494건(20.2%)이었다. 이균용 부장판사가 맡은 재판에서 노동자 승소 비율은 전국 평균에 불과했다. 이런 판사에게 ‘노동자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적 약자 인권 신장에 앞장섰다’고 말하는 건 과하다.

분석 시기에 2심 재판부였던 이 후보자는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많았다. 이 후보자가 맡은 79건 중 단 6건(7.6%)만 1심과 다르게 판결했다. 비슷한 시기 전국 법원에서 산재 소송 2심 판결이 1심과 다르게 나온 비율인 16.5%에는 크게 못 미친다. 한국일보는 이런 결과에 “1심을 존중하는 판결로 볼 수도 있지만, 사건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의심도 든다”고 했다.

이 기사는 고위 공직자 발언을 검증 없이 받아쓰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보도 관행에 경종을 울린다. 사실 한국일보도 지난 8월23일자 이균용 지명을 1면과 3면에 걸쳐 보도하면서 대통령실 발언을 그대로 옮기기에 급급했다.

한국일보는 8월 23일 3면에 “윤 대통령과 철학 공유하는 정통 법관, 사법부 위상 제고할 새 수장으로 낙점”이란 제목으로 이 후보자를 소개했다. 한국일보는 이 후보자가 2016년 ‘틱장애를 앓는 장애인의 장애인등록을 거부한 처분이 차별’이라고 판결해 ‘장애인인권디딤돌’에 선정됐고, 2019년 백남기 농민 사망 집회에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1심 판결을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다고 썼다. 두 사례는 모두 대통령실이 내놓은 걸 그대로 소개했다.

이 후보자 검증에 가장 열심인 언론은 한겨레다. 한겨레는 9월1일 1면에 이 후보자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날 8면에선 비상장주식을 보유해 9억여 원의 배당금을 받고도 공직자 재산신고에 누락한 점도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 후보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증여세 의혹도 보도했다. 한겨레는 9월13일 1면에도 “이균용 10억 장기간 신고 안 해 … 중대과실 땐 정직 등 징계 대상”이란 기사에서 이 후보자가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언론은 고위 공직자 검증보도를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병력 기피 정도에 한정한다. 사실 자체 취재도 아니다. 반대 당 정치인이 내놓은 의혹을 받아 쓸 뿐이다.

그 직책에 얼마나 전문성을 갖췄는지는 뒷전이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와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을 지낸 이주호 교육부 장관을 ‘교육전문가’라고 부른다. MB때 교육부 장관을 했다는 이유로 교육전문가란다. 그가 교육 관련 연구 실적이 있는지, 있다면 연구 배경과 방법, 결론이 한국 교육을 맡길 만큼 탄탄한지 살피는 언론이 없다.

한국일보의 이균용 판사 판결 분석기사가 후보 검증 보도에 선한 영향력을 줬으면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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