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한국노총 법률원 지역상담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을 비롯해 일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밥벌이의 고단함을 토로했다. 처음 접해보는 다양한 노동분쟁 사안에 효과적인 답변을 못 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항상 전화를 걸어 자문하는 사람이 손민숙 한국노총 경기상담소장이었다. 차분하게 쟁점 사항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조언함은 물론 “더 열심히 공부하라”고 격려하던 그는 한국노총 상담 활동가들의 든든한 멘토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났다. 생의 마지막에 그는 코로나19의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해 2주간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였다. 폐 이식 수술이 예정돼 있던 터라 그녀의 부고를 접한 이들의 황망함은 더했다.

그가 남긴 발자취에는 노동자들의 권리보장을 위한 치열함이 묻어난다. 그는 매년 2천500여건이 넘는 임금체불, 부당해고, 단체교섭 관련 상담을 수행하며 노동자들의 고충 해결에 힘을 쏟았다.

특히 그가 애정을 쏟은 분야는 노동교육이었다. 매년 2천여 명이 넘는 경기도 내 특성화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근로기준법 교육에 나섰다. 대기업 노조부터 중소 영세기업 노조까지 매년 수백 명의 노조 간부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교육에서 그는 항상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편에서 올바로 활동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으로 연간 수십 건이 넘는 부당해고와 같은 노동분쟁 조정 회의를 마다하지 않고 노사분쟁 조정과 해결에 앞장섰다. 우리 주변 장삼이사들의 수많은 상담사례를 연구하며 그 속에서 구조적 해결 방안을 찾는 데에도 정성을 쏟았다.

임금체불을 둘러싼 분쟁에서 노사의 주장이 엇갈리면 당사자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도록 급여명세서를 의무적으로 내주도록 하자는 그의 제안은 2021년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으로 명시돼 시행되고 있다.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를 한국노총이 꼭 해결해야 한다는 그의 바람은 이제 한국노총이 사회연대입법으로 실현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노조 간부들을 휘어잡던 카리스마와 달리 그녀는 자기 능력에 겸손했다. 김영규 한국노총 경기본부 조직본부장은 상담소장 자리가 비어 그를 소장으로 추천하려 하자 “자신은 아직 부족하다”라며 마다했다는 생전 일화를 소개했다.

이처럼 노조 간부로 활동하며 정치권으로, 때로는 공공기관으로 입신하기 위해 노조 활동경력을 앞세우는 일부 인사와 달리 그는 34년간 한국노총 상담 활동가로 낮은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황망한 죽음 앞에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는 이유다.

지난 18일 새벽 장지로 이동하기 전 유족들은 그가 평생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던 경기도 수원의 한국노총 경기상담소를 찾았다. 생전 그녀가 임금체불 진정서를 작성하고 상담 전화를 받던 사무실에서 유족들은 그의 소장 명패를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민숙아 고생했다. 좋은 곳으로 가려무나.”

함께 일했던 동료와 유족들은 눈물을 쏟으며 그녀의 영정사진과 유골을 안고 장지로 떠났다. 경기상담소 건물에 그가 직접 걸었다는 빛바랜 플래카드만 남았다. 현수막 속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임금체불과 부당노동행위 산업재해 등’이라고 써진 글귀를 보고 찾아오는 노동자를 이제 누가 맞이할까.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실장 (leesey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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