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에 이른 보건소 공무원의 ‘위험직무순직’이 2심에서도 인정됐다. 코로나 대응 업무가 위험직무로 인정된 것은 최초다. 2심은 코로나 관련 업무 부담으로 인한 ‘정신적 불안정’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됐을 것으로 판단했다.

법원 “‘덕분에 고마웠다’며 희생 요구”
‘내재된 위험 인한 재해’ 핵심 쟁점

20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9-2부(부장판사 김승주·조찬영·김무신)는 부산 동구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인 고 이한나(사망 당시 33세)씨의 남편과 부모가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인사처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이씨는 2020년 초순께부터 선별진료소와 역학조사를 하다가 이듬해 5월 관내 병원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로 지정돼 격리 관리담당을 맡은 지 닷새 만에 목숨을 끊었다. 1심은 이씨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보고 위험직무순직을 인정했다.

2심에서 주목할 부분은 공무원 희생에 적절한 대우가 이뤄졌는지다. 재판부는 “장기간에 걸쳐 ‘모든 사람이 대면을 기피했던 코로나19 확진자’ 등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다 유명을 달리했던 방역 담당 의료진의 유족에 대해 그에 걸맞은 처우를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존립의 근거”라며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뿐인 보상만으로는 희생을 요구할 수 없고, 또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쟁점은 위험직무순직 요건인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당 직무를 수행했고 △직무에 내재된 위험으로 재해를 입었으며 △재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된 사망에 해당하는지다. ‘내재된 위험 재해’ 요건이 충족하면 사망 원인이 재해가 될 수 있다.

사망 전 월 97시간 초과근무
노동계 “말뿐인 보상 아닌 건강권 보장하라”

재판부는 망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배경으로 ‘장시간 근무로 인한 만성적 과로’와 ‘코로나19 관련 업무 부담의 증가로 인한 정신적 불안정’을 꼽았다. 만성적 과로·정신적 불안정이 ‘감염병 환자의 치료 또는 감염병의 확산 방지에 내재된 고도의 위험’ 때문에 직접 발현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씨는 2020년 12월 97시간의 초과근로를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씨의 업무부담이 가중됐다고 봤다. 재판부는 “망인은 숙련된 인력의 충원 없이 통상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면서 별도로 코로나 감염관리 지원 업무를 온전히 수행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열악하고 치명적인 환경에서 수행해야 했던 직무 자체가 정신적 불안정이 생긴 근본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공무원 격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노조(위원장 전호일)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인사처는 공무원 노동자의 건강권과 휴식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며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뿐인 보상만으로 희생을 요구할 수 없다는 2심 판결을 인사처가 새겨듣길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을 대리한 서희원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고인의 만성적 과로와 정신적 불안정이 감염병 확산 방지 업무에 내재된 고도의 위험 때문에 직접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해당 직무의 위험성과 재해 발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정한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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