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내년 1월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5명 이상~50명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되는데 제도 안착을 위한 정부 예산안은 잇따라 삭감되고 있다. 정부는 50명 미만 사업장 유해·위험요인 개선을 위한 보조금 지원 사업인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 예산을 올해보다 300억원 넘게 줄인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안전감독 역량 강화 예산은 올해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근로감독관의 전문성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자 고용노동부는 올해 처음으로 해당 예산을 편성했다.

화재·폭발·폭염 사업장 지원,
휴게시설 설치지원 예산 ‘전액 삭감’

클린사업장 조성 지원 사업은 기술·재정적 능력이 부족해 산재에 취약한 50명 미만 사업장 등 소규모 기업에 산재예방 비용의 50~80%를 지원하는 제도다. 사업주는 자기부담금 일부와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 시설을 개선하거나 스마트 안전장치, 휴게시설 등을 설치할 수 있다.

내년 예산은 올해 5천69억7천400만원에서 6.9% 감소한 4천717억9천200만원으로 책정됐다. 유해·위험요인 시설개선 지원 제조·서비스업 사업장이 4천곳에서 2천832곳으로 줄었고, 화재·폭발·폭염 대비 2천200곳 사업장을 지원하는 항목은 삭제됐다. 건강일터 조성 지원의 일환으로 휴게시설 설치에 지원하던 222억9천200만원도 전액 삭감했다.

지난 8월 휴게시설 설치 의무 대상이 상시근로자 20명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상시근로자 10명 이상 20명 미만 사업장도 전화상담원이나 배달원·청소원과 같은 7개 취약직종 노동자가 2명 이상이면 휴게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여름에는 이상 기후로 폭염이 반복돼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관련 예산을 가위질한 것이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화재·폭발·폭염 예방 예산이 순감했다고 해서, 지원이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고 유해·위험요인 시설 개선 예산으로 쓸 수 있다”며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은) 사업내용이나 물량을 조정하다 보니 액수가 좀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신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 등 안전보건 기술 지원쪽 사업 예산은 늘었다”고 덧붙였다.

직접 지원 줄이고 융자 예산 대폭 늘려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 중 산재예방프로그램에 해당하는 2024년 전체 예산은 1조2천718억8천300만원으로 올해 대비 731억원(6.1%)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처럼 안전보건재정지원 사업의 일환인 산재예방시설융자가 약 1천억원이 증가한 영향이 컸다. 산재예방시설 융자 사업은 산재예방을 위한 시설·장비 교체, 방호 조치 비용을 정부가 저리로 빌려주는 사업이다. 사업주가 갚아야 하는 돈으로 정부는 코 안 대고 손 푸는 격이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교수(안전관리학)는 “융자는 사업주가 100% 갚아야 하는 돈으로 사업주한테 혜택이 덜 가는 것”이라며 “결국은 정부가 훨씬 많이 주는 게 클린사업장 지원 사업인데 정부가 안전보건 개선사업에 지원을 줄이겠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비용도 380억원에서 680억원 수준으로 크게 늘었는데 실질적 산재 예방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가 크지 않다.

강 교수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의 경우 중대재해처법법의 안전보건관리 체계의 서류상의 이행을 도와주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것이 사업장 안전에 획기적인 보탬이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이 현장 감독에는 힘을 뺐다. 소규모 사업장 같은 안전사고 취약사업장을 점검하는 안전보건공단의 패트롤카는 377대에서 318대로 줄였고 관련 예산도 약 28억원 삭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안전보건실장은 “작은 사업장 중심으로 패트롤점검을 시행하는 것은 현장에 점검이 나올 수 있다는 인식을 줘서 유의미하다고 본다”며 “공단이 작은 사업장을 직접 가서 점검하거나 개선하도록 하는 사업은 (패트롤점검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 실장은 “윤석열 정부는 감독이나 처벌 강화가 아니라 노사 자기규율예방체계로 중대재해를 관리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작은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체계가 있어야 하고, 사업장이 기본적으로 법을 지키고 법보다는 조금 더 높은 수준으로 위험요인을 찾아내 개선해야 한다”며 “그런데 패트롤점검은 줄이고 안전보건체계 구축은 컨설팅으로 하겠다고 한다”고 우려했다.

산업안전 감독·수사 강화 예산 1년 만에 50%↓

노동부가 국고로 실시하는 산업안전감독 역량강화 사업 예산도 반으로 뚝 잘랐다. 노동부는 올해 예산(46억2천900만원)에서 소폭 줄인 43억7천800만원을 요구했는데 기획재정부는 22억8천200만원을 책정했다.

이 사업은 산업안전감독관의 수사여건 개선, 수사역량 강화를 위한 직무교육, 현장점검의 날 운영으로 구성돼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수사 영역이 광범위해지고 대형 로펌 개입으로 수사 난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편성된 예산인데 사업 시행 1년 만에 반토막날 상황이 됐다.

노동부 관계자는 “올해 예산 중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조사실을 공사하는 비용이 컸고, 중대재해 수사와 관련해 포렌식 장비 비용이 포함됐다”며 “(내년 예산이 줄어도) 감독관 교육은 크게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재예방 사업에 대한 정부의 국고지원은 제자리 걸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6년 옛 노사정위원회 산재보험제도발전위원회는 산재예방사업비에 대한 국고지원 규모를 기금지출예산 총액의 3%를 목표로 단계적으로 확보하기로 합의했지만 2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산재보상보험 및 예방기금 순자산은 10조8천554억4천만원인데, 이 중 사회보험료와 정부 출연금은 각각 9조4천185억800만원, 213억원이다. 정부 일반회계 출연금은 0.19%에 불과하다. 전년보다 13억원 늘어났지만 여전히 1%에도 못 미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