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국제사무금융IT노조연합(UNI Global Union)의 세계총회 참석차 필라델피아에 다녀왔다. UNI에는 전 세계 150개국 약 2천만명의 금융·보건의료·언론·IT·우정·청소·간병 노동자들과 프로 운동선수들이 가입해 있다. 본조 사무소는 스위스 니옹에 있으며 유럽과 미주, 아프리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사무소를 두고 있다. UNI는 2021년 현재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과 50개 이상의 글로벌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한국 내 가맹조직은 한국노총 산하 금융노조와 의료노련, 우정노조와 민주노총 산하 보건의료노조, 서비스연맹, 사무금융노조, 언론노조, 정보경제연맹이다.

이번 총회가 열린 필라델피아는 유럽 이민자들이 신대륙에 정착해 살기 시작해 발달한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이자 미국 최초의 은행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필라델피아>도 있지만 ‘필라델피아 선언’으로도 유명하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1944년 5월10일 이곳에서 개최된 국제노동기구(ILO) 총회에서 채택된 선언으로, ILO의 목표와 목적, 그리고 회원국의 정책에 지침이 되는 원칙들을 담고 있다. 그 첫 번째 원칙은 너무나 유명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이다.

이번 UNI 총회는 하루 일정의 금융분과 총회(UNI Finance Congress)와 이틀 일정의 여성 총회(UNI Women’s Congress) 그리고 4일간의 세계총회(UNI Global Union Congress)로 치러졌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 넘게 화상회의로만 만나던 전 세계 노동 형제·자매들은 약간의 흥분된 분위기 속에서 재회의 기쁨을 나눴고 다시 함께 모였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총 7일간 진행된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국가·조직별 성과를 공유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나 조직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기도 했다. 장시간의 토론과 견해 발표 후에는 향후 4년간 전 세계 UNI 가맹 조직들이 함께 싸워 나갈 투쟁 목표와 방향에 대한 결의안이 채택됐다. 일일이 소개하고 싶지만, 그중 필자입장에서 인상 깊었던 몇 가지만 공유하고자 한다.

기업감시의무법 입법 결의

첫째, 기업감시의무법 또는 인권실사법이라고 불리는 법안의 입법 또는 강화에 관한 결의다. 이 법은 인권과 환경 문제에서 기업의 실사(due diligence) 책임을 자발적 정책에서 법률적 의무로 강화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윤효원 <매일노동뉴스> 객원기자의 2022년 11월17일자 “프랑스 기업감시의무법 ‘하청 잘못도 원청이 책임져야’” 기사에서 소개된 바 있다. 이 법안과 관련해 UNI는 ‘기업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룰 바꾸기’(Changing the Rules to Hold Corporations Accountable)라는 제목으로 결의했다. 결의안의 주요 내용은 △세계 각국에서 기업감시의무법(인권실사법) 제정 운동을 전개할 것  △법률 내용에는 노동자 인권 침해에 대해 해당 노동자 및 노동조합에 보상·배상 및 시정조치 등 완전한 구제책을 포함할 것 △실사(Due diligence)는 회사 내의 모든 업무에 대해 실시하고 그러한 실사의 모든 단계에 노동조합이 참여하는 절차를 포함하도록 추진할 것 △실사를 통해 노동자의 인권을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위험 파악 및 권리침해 구제 과정 전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 등이다.

프랑스에서 2017년 제정된 이 법안은 독일·노르웨이가 도입한 데 이어 EU의회에서도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프랑스의 경우 5천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이 적용대상이지만 ‘모기업뿐만 아니라 자회사·도급사와 하청업체, 심지어 비계약(non-contractual) 관계에 있는 업체까지도 기업감시 계획에 포함해야 한다’고 돼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입법 논의가 없었는데 동 제도에 대한 연구와 국내 도입방안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단체교섭을 통한 성평등 쟁취”

“디지털화 이익, 노동자들에 분배해야”

둘째, 단체교섭을 통한 성평등 쟁취와 청년을 위한 공동행동에 관한 결의도 필자의 이목을 끌었다. 단체교섭을 통한 성평등 쟁취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이 평등과 다양성·포용성을 촉진하는 중요한 수단이라는 인식하에 △성별 임금 및 연금 격차 해소를 위해 투쟁할 것 △노동시장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참여와 여성을 위한 교육 및 자기개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 등의 내용을 포함했다. UNI는 2020년 ILO 보고서 내용, 즉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여성노동자의 실업 증가, 돌봄 책임 증가, 젠더폭력(특히 가정폭력의 증가) 등을 언급하며 불평등 해소를 위해서는 단체교섭 및 합의 과정에 여성의 참여가 보장돼야 함을 확인했다. UNI는 이미 UNI의 모든 회의에서 여성 대표 40% 룰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역시 금번 총회에서 재확인하고 더 철저히 준수할 것을 다짐했다.

청년을 위한 공동행동 결의에는 청년세대(만 35세 이하)가 기성세대보다 실업 가능성이 높고 불안정하다는 인식하에 △새로운 일의 세계에 관한 정책의 설계, 토론 및 채택에 청년 노동자들을 참여시킬 것 △단체교섭 요구안에 청년 문제를 포함할 것 △청년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의 의사결정 기구에 참여(10% 할당)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같은 내용이 포함됐다.

셋째, 디지털화에 따른 AI와 알고리즘과 관련된 결의는 총회장을 방문한 미국 작가노조(WGA)의 파업과 UNI가 지속해 온 ‘Make Amazon Pay! 캠페인’, 그리고 쿠팡물류센터 문제와도 연관된 사안으로 필자에게도 숙제를 안겨 준 결의였다. 결의안에는 △디지털화로 인한 기회와 이익이 회사와 경영진에 독점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할 것 △노동자가 기술과 생산성 향상에 의해 대체되거나 해고되지 않고 더 많은 자기결정권을 통해 주당 근로시간을 단축할 것 △알고리즘과 디지털 프로세스를 노동조합과 지속적으로 테스트·논의·평가·검증해 채용·작업계획·급여·안전 등에 관한 사회적 편견이 제거될 수 있도록 요구할 것 △연결되지 않을 권리 등이 포함됐다.

또한 데이터 및 데이터 윤리에 관해 노동자는 개인 데이터의 수집·사용·저장 등에 대한 통제와 영향력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므로 △개인정보 또는 민감한 데이터(이메일, 채팅, 위치추적 데이터 등)에 대한 명시적 동의 없는 수집 금지 △퇴사시 회사 보유 개인데이터에 대한 삭제를 요구할 것 등의 기준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건강 및 안전 목적 외의 상시적 카메라 관찰은 허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알고리즘 관리에 의해 제고된 생산 목표와 성과 평가, 승진 결정 등은 투명해야 함과 동시에 공정성과 복리·지속가능성 보장을 위해 단체교섭의 대상돼야 함을 분명히 했다.

금융노조는 사용자측과 격년으로 산별 단체협약 개정 교섭을 벌인다. 비록 올해 임금에 관한 산별중앙교섭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에 예의주시하며 글로벌 기준들을 반영한 내년도 단체교섭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 UNI 세계총회 개막식에 참석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상원의원의 연설 일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국제적으로 우리가 할 일은 기업 도적들에게 세상은 억만장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새로운 기술과 존재하는 모든 부와 관련해 우리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소유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갖지 못하는 현실을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노동조합 운동입니다. 새로운 기술이 CEO들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싸운다면 우리가 성취할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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