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3일 푸틴과의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는 패권주의 세력에 맞서서 자기 주권적 권리와 안전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 정의의 위업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는 시종일관 러시아 정부가 취하는 모든 조치에 전적인, 무조건적인 지지를 표명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반미자주 전선에서 러시아와 함께 있을 것임을 이 기회를 빌어서 확언하는 바입니다.” 그는 또 정상회담 후 공식만찬에서 “우리는 패권을 주장하고 팽창주의자의 환상을 키우는 악의 결집을 벌하고 안정적인 발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신성한 투쟁을 벌이는 러시아군과 국민이 위대한 승리를 거둘 것을 확신합니다.” 이에 앞서 푸틴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오늘 회담에서 경제협력, 인도주의 문제, 한반도 정세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협력을 토론하려 합니다. 오늘 정말 이야기할 것이 많습니다”라고 했다.

기자회견이나 공식문서는 없었지만 일련의 발언이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러시아측의 특별한 환대를 볼 때 러시아가 북한과 동맹을 맺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는 회담 첫날 로켓·위성 기술을 상징하는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푸틴 대통령이 직접 안내했고, 15일 전투기 생산시설이 있는 하바롭스크주 콤소몰스크나아무레를 데니스 만투로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6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이 맞이했고, 태평양함대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안내했다. 그리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쇼이구 국방장관과 국방문제로 회담했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이 동맹관계 형성을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동맹의 성격은 약간 복잡하다. 러시아와 북한 두 나라는 미국이라는 같은 적에 맞서고 있다. 하지만 대립의 성격은 각기 다르다. 러시아는 미국의 ‘패권’에 맞서고 북한은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동맹은 반제 가치동맹이 아니라 반미 이익동맹이다. 한미일의 동맹이 반권위주의 가치동맹이 아니라 미제와 파트너들의 이익동맹이듯이.

반면 러시아가 갑자기 이렇게 북한과 동맹을 맺는 까닭은 단순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의 재래식 무기와 탄약이 필요해서라면 조용히 물밑에서 처리할 일이지 저렇게 대놓고 동맹관계를 과시할 까닭이 없다. 북·러는 지금 세계정세가 3차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인식은 주관적일까? 아니다. 세계대전 같은 큰 목표를 향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이 유럽과 일본을 동원하고 남한까지 끌어들여 우크라이나를 앞세워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리가 없다.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F-16전투기와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를 지원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큰 방향 설정이 없다면 미국이 계속적 한미연합훈련으로 대 북한 전쟁 압박을 강화할 이유도 없다.

자본주의가 이성적 존재라면 근대적 이성에 대해 강한 불신을 낳을 정도로 비이성적인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리 없고, 그 얼마 후 전체주의와 민주주의의 대결로 포장된 비이성적인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리도 없다. 이 전쟁들은 무슨 신성한 가치 때문이 아니라 독점자본의 제국주의적 이익 때문에 벌인 야만의 극치였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두 차례 세계대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종래에는 전쟁의 도발자가 후발 제국주의 세력이었다면 이번에는 선발 제국주의 세력이 도발자라는 점이다. 그들의 자본주의는 후기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경향 법칙과 말기 자본주의의 노동인구감소 법칙이 중첩돼 쇠퇴의 길로 미끄러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윤율 저하에 따른 축적위기를 극복하고자 생산시설을 대거 이른바 신흥시장으로 이전한 결과 중국을 위시한 신흥 자본·제국주의 세력이 미·서구 선발 자본·제국주의의 패권에 도전하는 형세가 조성됐다. 그런데 선발 자본·제국주의 세력은 평화적으로는 자신의 쇠퇴를 멈추게 할 수 없다. 그 쇠퇴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법칙들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현상유지를 위해 전쟁 도발이 불가피하다. 이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 자는 누구나 현실 앞에서 좌절할 것이다. 어떻게 이 세계대전 위기에 대처할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