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여성 정책과 무관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전문기자를 여성가족부 장관에 지명하고, “찍지마, 성질 뻗쳐서”라고 말한 인사를 15년 만에 문체부 장관에 재기용하려는 걸 보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에게 감동 주는 인사를 기대하긴 글렀다.

이번엔 대통령이 유일하게 좀 아는 영역인 법조계 인사를 보자. 지난 8월22일 대통령이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대법원장 후임에 지명하자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브리핑에서 그를 “32년간 오로지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 온 정통 법관이고,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원칙과 정의, 상식에 기반해 사법부를 이끌어 나갈 적임자”라고 추켜세웠다.

다음날 여러 언론이 ‘이균용 대법원장 지명’을 나름의 시선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8월23일 “대법원장에 ‘법원의 정치화’ 비판 판사”라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썼다. 한국일보도 같은 날 1면 머리기사에 “이균용 대법원장 지명 … ‘사법 정상화 적임’”이란 제목을 달았다.

두 신문은 기사 제목에서 김명수 사법부가 ‘정치화’됐고, ‘비정상’이라는 생각을 드러냈다. 이런 생각에 기반해 이균용 후보자를 오롯이 ‘재판과 연구에만 매진해 온 정통 법관’이라고 극찬했다.

김명수 사법부가 정치화됐다는 근거는 그가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우리법연구회’ 소속 진보 성향 법관을 사법부 핵심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적어도 윤 대통령과 이균용 후보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후보자는 2021년 2월 대전고등법원장 취임사에서 “작금의 현실은 사법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고 전락했다”며 김명수 사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내가 보기엔 김명수나 이균용이나 둘 다 ‘정치화’돼 있다. 하지만 보수언론은 김명수는 민주당에 기울어져 정치화된 판사고, 이균용은 이에 반기를 든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한다.

같은 8월23일 한겨레는 1면에 ‘대법원장 후보 이균용 사법부 보수화 가속도’라고 제목 달아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신임 대법원장에 보수 성향의 ‘윤 대통령 후배’ 이균용 서울고법 부장판사 지명”이라고 보도했다. 한겨레는 이균용을 법원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의 상징으로 그렸다. 경향신문은 대통령이 또 ‘아는 사람(후배)’을 기용했다고 평가절하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날 4면에 이균용 후보자가 지난해 12월 대전변호사회지 계룡법조에 기고한 글에서 그의 생각을 훑었다. 이 후보자는 기고에서 “자유의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고 적었다. 자유를 수호하려면 뭐든 해도 된다고도 읽힌다. 경향신문은 이를 콕 집어 “기고 글에 ‘자유 수호에 있어서 극단주의는 결코 악이 아니다’”고 제목 달았다. ‘일반화’가 언론의 숙명이라지만, 이 문장을 콕 집은 건 과했다. 차라리 ‘대법 보수5-중도4-진보5로 … 내년 6명 교체 땐 보수 과반 가능성’이란 분석기사(동아일보 8월 23일 4면 머리기사)를 쓴 동아일보가 이날 가장 언론다웠다. 적어도 국민 눈에는.

이 후보자는 2017~2018년(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과 2021~2022년(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태) 두 차례 사법부 혼돈 때 전자에는 침묵했고, 후자엔 강한 비판 목소리를 냈다.

김명수 사법부가 ‘우리법연구회’를 중용했다면, 이 후보자는 엘리트 판사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편 가르기만 하다 보면 남는 건 증오와 갈등밖에 없다. 언론이라면 이런 혼돈의 수렁에서 국민만 바라보며, 어떤 기사가 국민에게 도움 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음 번엔 국민 눈높이에 맞춰 이 후보자가 “장애인인권디딤돌상을 수상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개인의 초상권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판결 등 사회적 약자 인권 신장에 앞장섰다”고 말한 대통령 비서실장 발언의 진위를 캐 낸 언론을 소개해 보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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