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연금에 대한 공론을 살피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연금 하나만 가지고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재정 고갈의 위험과 미래세대를 위한 사회적 연대의 차원에서 현재 세대가 져야 하는 보험료 인상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적어도 정치권과 전문가 집단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된 모양이다. 말마따나 연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지만, 연금과 관련한 한국 사회에 내재한 다층적인 불평등의 단면은 외면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연금개혁의 논의는 단순히 재정을 계산해 보험료를 몇 퍼센트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만 한정해서는 안 된다.

현재 만 65세를 넘긴 노령인구 901만명 가운데 358만명만 국민연금을 수령한다. 노령 시민의 39.7%만 국민연금의 틀 안에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70%의 노인인구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월 32만원 수준으로, 절대적으로 적은 것이 현실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상대적 노인빈곤은 40%로, 세계경제협력기구(OECD)의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노년 빈곤이 너무나도 심각하다. 빈곤은 혐오를 낳는다. 지혜의 상징이라고 하는 ‘노인’ 이미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골칫거리로 취급하는 것 같다. 노인의 삶이 품격있고 안정될 때, 지금의 청년세대도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불평등과 격차가 그대로 노후의 공적연금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연금은 가입액(보험료)과 가입 기간의 비율에 따라 연금액이 결정된다. 한국 연금제도의 기본 틀거리를 살펴보면 균등급여인 A값과 비례급여인 B값이 있어 하후상박의 원칙 같지만, 실질적으로 연금액의 격차가 발생하는 것은 연금액보다는 연금에 가입한 기간이 얼마인가에 따라 격차가 생긴다.

2022년 통계결과 소득 하위 20%의 경우 가입률이 51%밖에 되지 않으며 이들의 평균 가입기간은 81.18개월로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가입기간인 120개월을 채우는 비율은 35.6%에 그친다. 그에 반해 소득 상위 20%의 경우 80.8%가 연금에 가입한다. 평균 가입기간은 151.7개월이고 최소가입기간을 충족하는 비율은 76.12%에 달한다. 이러한 격차는 성별에 따른 연금격차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성별에 따른 최소가입기간 충족비율을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77.32%인데 반해 여성의 경우 39.13%밖에 되지 않고, 가입기간의 차이로 인해 평균 수급액 또한 여성 46만원, 남성 90만원으로 두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금수급액의 지급률을 결정하는 소득대채율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소득대체율의 인상은 더 가진 자에 더 많은 연금을, 그리고 덜 가진 자에게는 적은 연금액을 인상할 뿐이다. 불평등한 노동시장의 구조를 지속적으로 고착·유지하는 복지시스템이다. 이에 더해 미래세대에 대한 노후 부담비용을 전가하게 되는 효과는 덤이다.

연금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구조를 다루는 문제이다. 그만큼 어렵기에 큰 변화가 아닌 작은 균열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연금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문제가 연금의 가입기간을 보장하는 ‘크레딧’ 정도로 되겠냐고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둘째 자녀부터 12개월밖에 인정하지 않으며, 군 복무도 6개월밖에 인정하지 않는다. 실업기간 또한 최대 1년 정도만 지원해 있으나 마나한 현실이다. 이에 대한 과감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역가입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 또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연금의 문제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으니 필요한 논의만 하자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렇다면 적어도 노동시장에 배제돼 경력단절과 불안정 노동의 위치를 전전하는 여성들과 프리랜서로 일하며 저소득 일자리를 전전하고 보험료 전액을 내가 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이들, 그리고 취업과 실업을 1년에 한두 번씩 반복하는 나의 동료들, 가입기간 10년을 채울 수 있을까, 없을까가 불확실한 가운데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적어도 노후만큼은 그 불평등을 줄이고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지난 3월 국민연금에 대한 5차 재정계산 결과 발표와 이를 기반으로 개혁과제를 도출하는 정부 재정계산위원회의 보고서를 발표하는 공청회가 있었다. 요약하자면 ‘더 내고, 더 늦게 받되,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보장성 강화 항목들 살펴보면 지역가입자 저소득층에 대한 보험료 지원 등의 내용은 전향적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대처에 비해 지나치게 취약하게 다뤘다는 우려가 든다. 또한 4차 재정계산 당시에도 제안됐으나 실행되지 않았던 내용들의 반복이다. 제안에서 끝나는 당위적 서술은 선례가 있기에 집행부에서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보장성 강화 특히 실질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방안이야말로 훨씬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제출돼야 한다.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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