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요즘 충남 서산 대산석유화학공단의 가장 핫한 이슈는 HD현대오일뱅크의 페놀 유출을 둘러싼 논란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HD현대오일뱅크가 2016년부터 2021년까지 276만톤 상당의 페놀이 포함된 폐수를 수질오염 방지시설로 보내지 않고 자회사인 현대오씨아이 및 현대케미칼 공장으로 배출했고, 현대오씨아이 등은 넘겨받은 폐수를 공장 내 가스세정 시설의 냉각수로 사용해 대기 중으로 증발시켜 방출한 것이다. 검찰은 HD현대오일뱅크가 폐수처리장 신설 비용 450억원과 연간 2억~3억원 상당의 자회사 공업용수 공급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폐수를 불법 배출한 것으로 보고 HD현대오일뱅크와 현대오씨아이 전·현직 임원 7명을 기소했다.

8월 초 언론보도가 시작되자 지역사회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서산시의회도 한목소리로 회사를 규탄하며 과징금을 추가 부과해 환경영향평가와 주민 배상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이 들어선 이래 끊임없이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와 환경오염 문제들로 날이 서 있는 인근 주민들의 분노는 또 한 번 폭발했다.

그런데 8월 말, 드라마틱한 반전이 벌어졌다. 정부가 ‘킬러규제 혁파’의 일환으로 기업 간 폐수 재이용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줄곧 ‘공업용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 간 공장폐수를 재활용한 것으로, 위법의 고의성이 없고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해 온 HD현대오일뱅크 등은 정부 발표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덧붙여 폐수를 냉각수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페놀화합물이 대기 중으로 유출됐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냉각 과정에서의 화학반응으로 페놀화합물이 대기로 유출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반박했다. 정부의 발표 이후 지역의 경제단체 등은 HD현대오일뱅크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다수의 경제지에서는 HD현대오일뱅크를 불합리한 규제에 희생당한 피해자인 것처럼 언급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정부의 ‘킬러규제 혁파’가 산업·환경·노동·인권에 미칠 막대한 파괴력을 감안하면 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사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 혁파가 어떤 결과들을 초래할지, 어떻게 환경·건강·안전에 균열을 일으킬지 미리 보여주는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산업폐수 재이용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간단하다. 그동안 한 사업장에서 발생한 폐수는 정화시설을 거치지 않고는 사업장 밖으로 배출할 수 없도록 규제했는데, 앞으로는 그대로 다른 사업장으로 보내 공업용수로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참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이번 사건을 돌아보자. 폐수를 넘겨받은 공장에서 최종적으로 방류하는 과정은 여전히 규제를 받을 테지만 그 이전에 넘겨받은 폐수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어떤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대기 등 다른 경로로 배출되지 않는지 아무도 감시할 수 없었다. HD현대오일뱅크 등은 화학반응을 운운하며 페놀의 대기유출은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주장의 과학적 정합성이 아니라 폐수가 냉각수로 사용된 과정을 그들 밖에는 아무도 모른다는 상황 그 자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기업의 환경오염 사건에서 늘 잊혀지는 존재들 말이다. 수질·대기오염 문제에만 주목하다 보면 우리는 자주 그 안에 노동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그 공장 안에는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정체 모를 폐수를 이용해 일하게 될 노동자들이 있다. 2018년 부산의 한 사업장에서 폐수를 처리하던 폐수처리업체 노동자 3명이 급성중독으로 숨졌다. 폐수처리를 맡긴 업체가 폐수에 황화수소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알고도 알리지 않은 책임은 한없이 커서 문제지만, 아무도 모르는 상황은 책임지는 이가 없어 문제다. 그리고 늘 그렇듯, 위험은 책임이 자리를 비운 곳에서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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