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사고나 자연재해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참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사람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재난 예방에 힘을 쓰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많은 비용을 들인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명보다 기업의 이윤이나 정권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위험을 개인들에게 떠넘기기 마련이다. 조직문화와 가치, 정책의 방향에 따라 어떤 사회는 더 위험해진다.

그래서 ‘책임’이 중요하다. 재난 예방과 대응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이들이 재난·참사에 제대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이후에 발생한 많은 참사에서 권한을 가진 책임자들은 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 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더 이상 정부가 나를 재난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준다고 믿지 않게 됐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위험은 약자들에게 집중되고, 소위 ‘안전산업’이 발전해 안전도 구매상품이 돼 버린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어야 한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하다. 3년 전에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 한 번 제대로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자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하고 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은 ‘진상규명과 피해자 권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을 하다가, 그 내용을 이미 담고 있는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이 법이 통과돼 있었더라면 유가족들이 ‘그렇게 눈물 흘리고 삼보일배를 하면서 국회에까지 가서 호소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며 안타깝다 말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기업과 정부의 책무라고 규정한다. 정부가 위험에 대한 대응과 수습만이 아니라 예방을 위한 안전영향평가 등도 충분히 시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부에게 의무가 있다는 말은 시민들에게 생명을 지키고 안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시민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위험 정보를 충분하게 알 권리를 가진다. 그리고 정부의 재난 예방과 대응, 그리고 수습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정부에게 안전을 제대로 보장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재난·참사의 피해자는 바로 이 권리를 훼손당한 사람들이다. 생명안전기본법에서 피해자의 권리를 별도로 규정한 것은, 피해자들이 그 권리침해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도록 지원할 의무가 정부와 우리 사회에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서는 진실을 알고 재발방지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따라서 피해자의 권리에는 여러 가지 지원만이 아니라 모이고, 알고, 행동할 권리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참사가 발생하면 그와 연계된 공동체가 어려움을 겪는다. 그 공동체가 다시 회복되려면 참사를 충분히 애도하고 기억하면서 재발방지를 위해 함께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참사의 원인을 알아야 재발방지대책도 가능하다. 참사의 원인을 안다는 것은 누가 어떤 법률적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파악하는 것만이 아니다. 수사는 누가 사법적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 정작 당사자들은 구조적인 원인을 밝힐 수는 없다. 10·29 이태원참사에서 많은 이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경찰과 소방이 바로 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보다, 왜 그들이 구조요청을 위험신호로 인식하지 못했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구조적인 원인을 밝히는 독립적인 진상규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생명안전기본법에 독립적 진상조사 기구를 담고 있는 것이다.

참사를 개인의 불운이나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면 많은 부분 예방이 가능하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정부는 안전을 시민의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더 시민들이 힘과 역량을 모아 ‘안전권’을 찾아나가야 한다. 그 출발이 9월 한 달 진행되는 ‘생명안전기본법 국민동의청원’이다. 바로 참여하고, 주변에 참여를 독려해 주시기를 요청드린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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