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3일 오후 한국노총회관에서 열린 지역노동운동 강화와 지역노사민정협의회 활성화를 위한 한국노총 지역정책전문가 간담회 모습.<정기훈 기자>

노사정이 모여 지역의 고용·노동 현안을 논의하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 내년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2005년 정부가 지역노사민정협의회에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한 뒤 처음이다.

노조와 노사 자치를 등한시하는 윤석열 정부 정책 기조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44억원 편성했던 노조 보조금을 전액 삭감했고, 노사발전재단이 직접 운영하는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예산도 전액 삭감했다. 공통점은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사업이란 것이다. 노동자의 의견이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사업은 모조리 축소하는 모양새다.

기후변화·산업전환으로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역할은 커지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되레 거꾸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년 예산 16억200만원 → 0원

1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16억200만원이던 지역노사민정협력활성화 사업비 내년 예산안은 ‘0’원이다. 해당 예산은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지역 일자리 창출 등 노동·고용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용이다. 광역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사무국 운영에 필요한 인건비·경비를 포함해 사업비를 최대 1천500만원 지원받을 수 있다. 기초단체도 사업비 일부를 심사를 거쳐 지원받을 수 있다.

예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뿌리 내리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2008년 부산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처음 설립된 후 꾸준한 지원으로 13년이 지난 2021년 기준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164개(광역 17개, 기초 147개)로 늘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운영과 연관된 예산 중 유일하게 남은 것은 지역노사민정협력활성화 합동 워크숍(250만원)·지역노사민정협의회 추진실적 및 모니터링(720만원) 등 노동부 노동정책실 기본경비 예산뿐이다. 1천만원도 채 안 된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는 예산을 줄이려는 기획재정부의 의중과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현장은 보고 있다. 박덕수 부천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사업에 ‘노’자가 있는(노동계와 연관이 돼 있는) 영향도 분명히 있다고 본다. 현 정부 특성상 노사정 자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이라며 “또 정량적 평가를 우선하다 보니 당장 성과가 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보고 하는 사업에 정부가 긍정적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 운영은 위탁이 가능한데 한국노총 지역본부에 위탁을 한 경우도 있다. 노사민정이 특정 의제에 대해 논의하는 기구로 노동자 목소리가 공식화하는 곳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거친 뒤 필요성 커져
일부 지역 성과 보여

유일무이한 지역 거버넌스인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역노사민정협의회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지역경제와 고용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 노사정이 자발적으로 협의체를 구성한 것이 모태다. 이후 정부도 필요성을 느꼈고 이명박 정부가 국정과제로 내세우며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설립을 적극 추진했다.

성과도 있었다.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양산시·용인시·남양주시 등 여러 지역 노사민정협의회는 노사 간 전염병 예방 노력, 경제적 고통 분담, 고용유지 등의 내용을 담은 노사민정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사업장 내 노사갈등이 깊어 노조가 파업을 앞두고 있을 때 갈등을 해결하는 역할도 한다. 지역 노사민정이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 온 신뢰 덕분이다.

중앙정부 예산삭감으로 이런 역할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과 전문가 의견이다. 박덕수 사무국장은 “금액은 크지 않지만 지원이 꾸준히 이어져 지역의 사회적 대화, 노동정책 등이 나오고 이제야 효과를 보고 있다”며 “예산삭감으로 십수 년간 투자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앙정부 예산이 적더라도 지원만 된다면 지방자치단체 예산 확보도 수월한데, 국고보조금이 사라지면서 지자체 예산도 삭감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종화 충주시노사민정협의회 사무국장은 “협의회에 참여하는 각 지역별 기관과 관계자가 있는데, (노동·고용 관련) 특정 문제가 발생하면 이분들이 모여 사회적 합의를 해야 한다”며 “평상시에 모이지도 않다가 문제가 발생했다고 모여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갈등 요인 느는데, 해소 창구는 축소
“노사갈등 더욱 부정적인 양상 될 것”

전문가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기후변화 등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노사갈등 지점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지역 같은 경우 산업전환 과정에서 타격을 많이 받는다”며 “지역노사민정협의회가 산업·노동 관련 의제를 논의하고, 지역 차원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없어져 버리면 노사갈등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황 부원장은 “중앙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이 사라지면 지역에서도 관심이 없어지고, 노사민정이 이야기할 통로가 사라지면 나중에 갈등이 더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노사’ ‘노동’이 붙은 예산을 일괄적으로 삭감하고 있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니 지역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단순한 접근으로 한 결정”이라며 “지자체 예산을 사용할 수 있지만 한계가 있고 그나마 중앙정부 노사협력 활성화 사업으로 유지가 됐는데 이게 사라지면 지역노사민정협의회 활동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지자체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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