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강훈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선임차장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노동자가 얼마나 죽어도 괜찮은지 알려 달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한 정부 관료가 노·사·정·공익위원들을 향해 했던 말이다. 그동안 들었던 수많은 말들 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 보면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는 말은 마법 같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안전보건규제 정도는 너무 쉽게 완화되고,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병들어서 겨우 만들어진 법과 제도도 하루아침에 고쳐질 운명에 처한다. 나라 경제를 살리는(?) 기업인들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7일 국민의힘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50명 미만 사업장 적용을 추가로 2년 유예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중소기업의 경영상 어려움과 나라 경제의 어려움, 그리고 국가경쟁력 상실을 막는다는 이유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당시에 50명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 여건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적용을 3년 유예했다. 그런데 또다시 2년을 유예한다고? 2년 뒤에 달라지기는커녕 또 시행 유예를 요구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와 국회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뒤 3년 동안 50명 미만 사업장이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할 책임은 정부에게 있었다. 또한 국회는 정부의 지원내용을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강화하도록 법·제도를 보완하고 예산을 감시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부와 국회는 그동안 손 놓고 있다가 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시행 유예를 한 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50명 미만 사업장 대부분은 열악하고 영세하다. 이러한 이유로 산업안전보건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많은 안전보건규제가 적용 제외돼 수십 년 동안 방치됐다. 그 결과 50명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가 전체 산재의 80%에 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를 주장하려면 최소한 그동안 안 했던 것을 하겠다거나 돈이든 대책이든 무언가를 내놓겠다는 모습이 보여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놓지도 않으면서 신경 쓰지 않아도 적당히 넘어갔던 과거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태도로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준비가 안 됐다거나 역량이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용자측에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준비가 안 됐기에 역량이 안 되기에 더욱 시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50명 미만 사업장이 비로소 움직인다. 노사가 함께 산재예방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언가라도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24년 1월27일부터 50명 미만 사업장에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

물론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일터에서 죽고 다치고 병드는 사람이 당장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위해 노사가 함께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당연한 책임과 의무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안전보건규제를 완화하고 처벌받을 사람의 처벌을 계속해서 면제해 주는 한, 일터에서 죽고 다치고 병드는 사람은 계속 생겨난다.

“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해서 죽어도 괜찮은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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