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채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인구동향에서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었다.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나는 결혼은 안 해도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아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이 생각을 유보하게 된 건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다.

이달 14일은 서울교통공사 직원이었던 남성이 직장동료를 살해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1년 되는 날이다. 남성이 여성만을 타깃으로 한 여성혐오 범죄는 강남역 살인사건을 비롯해 많이 알려졌다. 신당역 살인사건은 일터에서 발생한 여성혐오 범죄가 어떤 형태인지를 보여줬다. 신당역 살인사건은 일터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괴롭힘을 알리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신당역 살인사건 가해자는 입사동기였던 피해자를 몇 년에 걸쳐 스토킹하고 불법촬영을 감행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더 긴장하고 불안해했다. ‘로맨틱한 고백’이 아니다. 직장에서 원치 않는 연애대상으로 지목했다는 고백은 부담을 넘어 공포가 된다. 지난 2월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 8.1%, 여성 14.9%가 직장에서 원치 않는 구애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 9.2%, 비정규직 13.8%가 원치 않는 구애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조사에서는 원치 않는 갑질을 ‘구애 갑질’이라고 명명했다. 구애 갑질은 남성보다 여성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이 당하고 있었다. 사회와 직장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는 성별과 고용형태가 더 많은 ‘구애 갑질’을 당한다는 의미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시초는 강압적 구애와 스토킹이었다. 이를 방치했을 때 더 큰 사회적 피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강압적 구애는 쉽게 스토킹으로 이어진다. 스토킹은 직장에서도 발생한다.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여성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간 ‘직장 내 스토킹’을 당했다고 답했다. 스토킹 가해자가 직장 상사인 경우가 74.1%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3년간 직장내 성희롱 신고사건 중 과태료가 부과된 경우는 7.1%에 불과하다. 사용자도, 정부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

피해자 대부분이 여성이거나 부하직원인 이유는 직장에서 여성을 동등한 동료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전 직장에서 ‘오빠라고 불러봐’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주변지인들이 직장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을 종종 듣게 된다. 신고하기 애매한 수준이라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지만 신고를 해도 직장에서 유의미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워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직장도 사회도 나를 보호해 줄 것이란 기대가 없는 여성들은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벅차다.

2019년 7월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1년 기준 지난 3년간 정부의 직장내 성희롱 방지대책 인지도에 대한 조사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인식이 높았다. 37.5%가 직장 내 성희롱 관련 기구 확대가 미비하다고 답변했다. 또 30.1%는 ‘직장 내 성희롱 사건처리 절차 준수, 피해자 보호 등 기관(회사)의 사건처리 역량이 향상됐냐’는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했다. 아직까지 직장 내에서 성희롱 관련된 사건을 처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일상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도 나의 안전을 지켜주지 않는다. 나 하나 건사하기 어려운 개체가 어떻게 다음 세대를 낳을 수 있을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여성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도록 시민으로서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직장이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즉각 보호하고 빠른 대응과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 문제발생 시 직장에서 지체하거나 은폐하지 않도록 사용자의 책임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안전해진 일터와 완전하게 보장된 권리는 한 명의 여성 이상의 큰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예를 들면 출산율 말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gs238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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