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지부장 박성모)가 지난해 10월12일 중앙노동위원회 앞에서 부당정직과 부당해고를 인용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

울릉도-독도 항로를 운항하는 여객선 회사 씨스포빌이 선원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다른 여객선 회사로 ‘전적’하고, 휴업을 명령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회사는 노조설립 이후 조합원만을 대상으로 전적·휴업·해고를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조탄압’ 일환으로 이뤄진 정황이 짙다.

전적 시킨 뒤 최저임금만 지급

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재판장 송각엽 부자판사)는 해상여객운송업체 씨스포빌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인사발령 및 부당휴직 구제재심판정 취소소송에서 지난달 31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씨스포빌은 2021년 7~8월 선장과 기관사 등 선원 5명을 같은 대표인 박아무개씨가 운영하는 정도산업으로 전적했다. 이에 따라 선원들은 기존에 탔던 씨스타 5·11호에서 정도산업의 씨스타 1·3호로 배정됐다. 또 회사는 선장 A씨에게 ‘코로나로19 인한 여객감소 및 미운항’을 이유로 2021년 7월13일부터 지난해 3월31일까지 휴업을 통보했다.

전적과 휴업 배경에는 노조설립이 있었다고 노동자들은 주장했다. 씨스포빌·정도산업 선원들은 2021년 5월 민주연합노조 해운지부(지부장 박성모)를 설립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휴항 중인 선박에 배치됐고, 최저임금만 받으면서 일했다. 노조는 “임금 손실이 월 300만원에 달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들 월급은 330만~510만원에서 2021년도 선원 최저임금인 224만9천500원으로 절반 가까이 깎였다. 결국 선원 9명은 2021년 10월 해고됐다. 이들 중 2명은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고 해고에 이르렀다. 박성모 지부장은 “부당전적과 관련해 동해지방해양수산청 근로감독관에게 근무일지를 제공한 것을 빌미로 징계해고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위 판정에, 사측 “대표 같아 정당” 소송

선원들은 노동위원회 문을 두드렸다. 동해선원노동위원회는 부당전적과 부당휴직을 모두 인정했다. 중노위도 지난해 1월 “인사발령은 소속 법인을 변경하는 전적에 해당하는데, 업무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반면 노동자들의 생활상 불이익이 크고 동의를 얻지 못해 부당하다”고 판정했다. A씨에 대한 휴업도 경영상 필요성이나 대상자 선택의 합리적 근거가 없다고 봤다. 다만 초심 구제명령을 미지급 임금 차액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변경했다.

사측은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씨스포빌과 정도산업 대표자가 동일하고, 같은 울릉도-독도 노선 여객선을 운항하고 있어 ‘전보’에 해당하고 정당성도 갖췄다고 주장했다. ‘전적’으로 보더라도 근로계약상 교차 승선이 가능하도록 정하고 있고, 묵시적 관행이 있었으므로 명시적인 동의가 없더라도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회사는 선원법에 따라 경영 사정으로 근로자 동의를 얻어 소속을 타 회사(여객선)로 이동시킬 수 있다”는 근로계약서 조항을 제시했다. 휴업 역시 업무상 필요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법원 “전적 동의 관행 없어”

씨스포빌 홈페이지 갈무리
씨스포빌 홈페이지 갈무리

법원은 인사발령이 ‘부당전적’이라고 판결했다. 먼저 씨스포빌과 정도산업은 별개 회사이므로 선원들을 정도산업 선박으로 보낸 것은 전적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전적에 대한 노동자들의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관행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동의를 얻지 않고 다른 법인체로 근로자를 전적시키는 관행이 명확히 승인됐다거나 사실상의 제도로서 확립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측은 선장 A씨가 정도산업 선박(씨스타 3호)으로 가겠다고 말한 사실을 토대로 정당한 인사발령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씨스타 3호는 휴업 허가를 받아 지난해 3월까지 휴업했고, 향후에도 장기간 운행할 예정이 없었으므로 전적 동의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교차 승선’ 주장 역시 선원이 기존 회사와의 근로계약 유지를 전제로 다른 회사에서 일한 것이라며 전적 관행이 있지 않았다고 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회사의 승선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A씨를 휴업 대상자로 선택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고, 노조와 협의를 거친 적이 없다며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부당해고 소송 남아, “노조탄압 일환”

이번 판결이 부당해고 사건에도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씨스포빌은 지난해 7월 중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현재까지 두 차례 변론이 진행됐다. 선원들을 대리하는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회사는 정상적으로 근무한 선원을 노조설립 이후로 휴업 중인 선박으로 보내 버려 임금의 절반을 깎아 버렸다. 노조탄압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성모 지부장은 “부당해고 소송이 있어 이번 판결을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며 “회사는 노동위원회를 거쳐 소송까지 불사하고 있어 대응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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