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고 양회동 열사께서 분신 자결한지 100일이 훨씬 지났습니다. 50세의 철근공. 두 아이의 아버지. 평범한 가장 고 양회동 열사께서는 올해 세계노동절, 무리한 수사에 절규하며 불꽃으로 산화하셨습니다. 이 사태를 거론할 때마다 법률가로서 참담함을 느낍니다. 고 양회동 열사께서 자결하신 장소는 다름 아닌 수사기관,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 앞 주차장이었습니다. 사법기관 앞에서 한 명의 피의자가 분신 자결로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것은 국가의 사법시스템이 붕괴된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국면에서 노동 3권의 침해를 언급하기 앞서 형법의 최후수단성·보충성 등 근대 법치주의의 역사가 쌓아온 형사법의 기본 이념 자체가 실종되고 있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건폭” “건설노조가 조폭식으로 돈을 뜯어낸다” “건설노조는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자 노동자 빨대다” “노조의 탈을 쓰고 돈을 뜯어가는 약탈집단이다” “빨대 꽂는 기생충이다” “건폭이 독버섯처럼 자랐다” … 이같은 표현은 노동조합 혐오에 가득 찬 일개 필부(匹夫)가 술자리에서 뱉은 사담(私談)이 아닙니다.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들. 대통령, 국토부장관 및 주요 국회의원들이 공식석상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모든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헌법 33조에 따라 노동 3권을 향유합니다. 국가는 헌법 10조가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 보호의무에 따라 모든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향유하는 노동 3권을 보호할 책임을 부담합니다. 요컨대 국가는 국민이랑 노동조합이랑 싸우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조합을 국가의 적으로 삼는 이유가 무엇인지. 최소한의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임은 강력하고 위험합니다. 특히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만든 왜곡된 프레임은 더더욱 강력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소추절차가, 노동 3권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왜곡된 프레임에 의해 지배될 경우 국가의 형벌권은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절망적인 실상은 감추고, 조폭이라는 프레임을 덧칠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1명 이상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업현장, 임금체불이 빈번한 산업현장, 불법하도급으로 인해 중간착취가 범람하는 산업현장, 일용직 중심의 고용 불안이 만연한 산업현장. 거의 노동법의 공백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건설 산업현장의 무정부 상태는 외면하고, 여기서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외친 건설노조에는 조폭이라는 프레임을 덧칠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 형사사건을 담당할 때 고 양회동 열사께서 남기신 유서를 다시금 꺼내 읽곤 합니다. 열사께서 남기신 유서 중에는 ‘우리 건설노동자는 더 이상 80년대 건설 현장에서 일하지 않고 싶을 뿐입니다’라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건설노조에 대한 일련의 공안탄압 정책의 목표가 건설현장을 80년대로 회귀시키려는 것이었다면 윤석열 정부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반년이 넘어가는 공안탄압 정국에서 건설노동자들의 권리는 후퇴했습니다. 다시 불법하도급, 중간착취와 산재는 증가하고 있으며, 노동조합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거부하는 황견계약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건설노조 조합원들 중 상당수는 다시 실업상태로 돌아가고 있으며, 심리검사 결과에 의하면 경찰의 수사과정에 절망해 조합원 10명 중 3명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며 법률가인 필자는 차라리 정권이 솔직했으면 낫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 3권을 존중할 생각이 없다고.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보장받을 필요가 없다고. 건설노동자의 노동 3권을 와해시키는 일련의 작태를 법치주의의 확립이라는 거짓말로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용산에 있는 당신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고 양회동 열사의 분신을 접하며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당신들의 왜곡된 정치적 세계관을 위해 무리한 수사를 종용하고 평범한 철근공, 가장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정치인이기 전에, 법률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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