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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기숙사에서 발생한 코로나19를 피하고자 왕복 100킬로미터 거리의 자택에서 출근하던 중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내 숨졌다면 업무 관련성이 있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서 정한 ‘출퇴근 재해’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 산재보험 급여를 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동료 코로나에 편도 1시간 거리 출퇴근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최수진 부장판사)는 제조업체 직원 A(사망 당시 33세)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21년 9월 경기 화성시의 포장재 제조회사인 S사에 입사해 품질관리를 담당해 왔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중 지난해 3월 동료가 코로나에 감염되자 천안시의 자택에서 자차를 운전해 출퇴근했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약 51킬로미터로, 자동차로 1시간9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런데 자택 출퇴근 일주일여 만에 사고가 일어났다. A씨는 지난해 4월8일 2차선 도로를 달리다가 1차선으로 감소하는 구간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반대방향에서 오던 5톤 트럭과 충돌했다. A씨는 6일 만에 외상성 뇌손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출근 중에 발생한 사고라며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공단은 “도로교통법 및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며 부지급 결정을 했다. 그러자 유족은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졸음운전으로 인해 중앙선 침범을 하게 된 것”이라며 지난해 9월 소송을 냈다.

법원은 산재보험법상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코로나가 한참 유행하고 있었던 상황을 고려할 때, 고인이 회사에서 약 51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출퇴근하게 된 것이 자율에 맡겨진 선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고인은 코로나 감염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편도 1시간 이상 소요되는 자택에서의 출퇴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법원 “졸음운전이 원인, 범죄행위 아니다”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업무상 사유로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졸음운전’이 교통사고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사고 목격자들이 ‘고인이 정상적으로 운전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했고 음주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고인이 졸음운전으로 인해 전방을 제대로 주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사고는 근로자의 업무수행을 위한 운전 과정에서 통상 수반되는 위험의 범위 내에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고 달리 업무 외적인 관계에서 기인하는 사유가 있다고 볼 자료가 없다”며 “고인의 주의의무 위반행위가 사고의 우연성을 결여시켰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코로나 확진으로 다른 직원이 격리돼 업무가 일부 증가했다는 동료의 확인서도 근거가 됐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근로복지공단은 도로교통법이나 교통사고처리법에서의 범죄행위가 있다면 산재보험법상 범죄행위가 인정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중앙선 침범 같은 범죄행위에도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 출퇴근 재해로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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