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호텔공대위와 108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3월3일 오전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세종호텔 노동자 부당해고 판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세종호텔이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를 이유로 식음사업부문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휴업명령’은 위법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구체적인 대상자 선정 기준이 없어 불합리하다는 취지다. 아시아나항공 하청업체인 아시아나케이오 역시 무급휴직에 동의하지 않은 직원들을 해고했다가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확정됐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이 제기한 부당해고 소송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직무 사라진 노동자들 ‘강제휴업’ 중노위 “부당”

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강우찬 부장판사)는 세종투자개발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휴업명령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지난 1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이번 판결은 휴업명령 2년여 만에 나온 첫 법원 판단이다. 사건은 코로나 유행에 따른 대규모 적자가 배경이 됐다. 2019년 호텔 식음사업부문은 약 13억원 적자가 났고, 2020년에는 전 영업부문에서 적자가 발생했다. 이에 호텔이 구성한 ‘구조조정 협의체’는 희망퇴직을 실시해 29명이 퇴사했다.

조직개편도 이뤄졌다. 호텔은 2021년 10월1일 식음사업부문을 폐지했다. 같은해 10월부터 직원 일부는 프런트와 환경관리 보조 헬퍼로 배치전환됐고, 직무가 없어진 7명은 최대 세 차례에 걸쳐 휴업을 명령받았다. 직원들은 10월12일부터 12월10일까지 휴업했고, 모두 정리해고 대상자에 포함돼 같은해 12월10일 희망퇴직한 3명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은 해고됐다.

그러자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지부장 고진수)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휴업명령이 부당하다며 구제를 신청했다. 서울지노위는 대상자 선정기준이 공정하지 않았다며 노조 신청을 인용했다. 중노위도 같은 판정을 내리자 세종호텔은 지난해 5월 소송을 냈다.

세종호텔측은 “휴업명령은 정리해고와는 무관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며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고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도 과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심 판정은 사안이 다른 2009년 9월 대법원 판결 법리를 적용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법원은 ‘경영상 필요’로 인한 휴직명령이 정당한지는 경영상 필요성과 노동자가 받을 불이익을 비교해 휴직명령 대상자 선정 기준이 합리적인지를 살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세종호텔측은 대기발령이 사용자의 인사권에 포함된다는 취지의 2002년 12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호텔측이 제시한 대법원 판결 역시 근로자의 불이익과 사용자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 여부를 비교·교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며 호텔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상자 선정 기준 없고 협의도 안 해”

재판부는 휴업명령의 구체적인 대상자 선정 기준을 고지하지 않았고 노동자와 협의 절차도 거치지 않아 위법하다고 못 박았다. 호텔측은 서울지노위에서 “프런트 헬퍼의 경우 외국어 능력과 야간근무 가능 여부 등을 기준으로 남성 직원을 중점으로 선발했고, 환경관리 헬퍼도 무거운 짐을 나르는 업무 특성상 남성 직원을 우선 선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프런트 직무의 경우 식음사업부문 전 직원을 대상으로 외국어 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통해 검증했다고 볼 수 없다”며 “기존 프런트 업무 경력을 무시하고 성별을 우선으로 배치전환 대상자를 선정한 것 역시 합리적 기준으로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협의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호텔측은 세종호텔지부가 구조조정 협의체 참여를 거부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협의는 세종호텔지부와의 개별 협의절차 진행으로도 가능하다”며 “호텔이 대상자나 지부와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사정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꼬집었다.

‘경영상 필요성’ 쟁점 부당해고 소송 선고 예정

이번 판결이 부당해고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다. 해고된 노동자 11명은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에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해 소송을 냈다. 네 차례 변론 끝에 11월3일 선고될 예정이다. 쟁점은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다퉈졌다. 이번 사건에서 경영상 필요로 인한 휴직명령에 관한 명시적인 판단은 없지만, 대법원 법리를 인용한 만큼 경영상 필요성의 구체적인 요건을 따질 가능성이 있다.

지부를 대리한 조혜진 변호사(서비스연맹 법률원)는 “부당휴업이 부당해고를 전제로 이뤄진 인사명령인지까지 판단되지 않았지만, 폐지된 사업부의 직원들에게 휴업명령을 하면서 아무런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이 부당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인사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성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진수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코로나가 거의 끝나가는 시점이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도 정리해고까지 이뤄진 것은 부당하다”며 “결국 외주화라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지부는 해고 이후 1년9개월간 호텔 앞에서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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