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기업의 COO(최고운영책임자) 지위에 있더라도 대표이사에게 구체적인 업무 진행과정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아 일했다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임원이지만 업무 성격상 대표의 지휘·감독 아래 노무를 담당하면서 보수를 받아 왔다면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는 2017년 대법원 판결에 따른 취지다.

해고 임원, COO 달고 정부지원사업 유치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최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기 성남의 제조업체 대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회사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B씨와 2020년 4월부터 그해 9월까지 근로계약을 체결하면서 임금·소정근로시간·휴일·연차휴가 등을 서면으로 명시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2020년 9월 해고하면서 해고예고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은 혐의도 받았다.

쟁점은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였다. 근로자성이 인정되지 않으면 A씨 혐의도 무죄가 되기 때문이다. B씨는 입사 후 COO 직함을 달고 주로 정부지원사업 유치 같은 업무를 했다. A씨측은 B씨가 정부지원사업 유치에 전권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1심은 B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면서 A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 가입, 인사위원회 징계해고 의결 등을 근거로 B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B씨가 정부지원사업의 유치에 관해 전권을 가진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이는 피고인이 사실상 구체적 지휘·감독권을 행사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며 “피고인이 광범위한 자율권을 준 결과 B씨가 업무수행에 관한 전권을 가진 것”이라고 판시했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B씨가 자율적으로 업무를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는 정부지원사업 유치 경험을 바탕으로 사실상 근로조건을 스스로 정한 것과 다름이 없다”며 “피고인과 정부지원사업 유치 상황 등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거나 직원들에게 업무 지시를 한 것 외에는 업무 내용에 관해 피고인의 지휘·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B씨의 출근시간과 장소가 자유로웠다고 봤다. B씨는 주 1회 이상 회사에 출근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운영하던 개인회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재판부는 “B씨는 주 1회 이상 출근하지도 않았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지 않았다”며 “피고인도 무단결근을 문제 삼지 않고 매달 임금을 지급하는 등 B씨는 근태관리를 전혀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재직 동안 사업체를 별도로 운영한 부분도 지적했다.

대법원 “구체적 지휘·감독, 고정급 받아”

그러나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다른 임원들과 달리 B씨의 경우 등기부상 임원으로 등재되지 않고 4대 보험에 가입된 점이 작용했다. 또 정부지원사업 유치 업무에 관한 진행 과정과 결과를 A씨에게 보고해 지시받았다고 판단했다. 인사위원회에서 징계사유로 ‘업무지시 거부’를 포함한 부분도 근거로 삼았다.

B씨가 임원이지만 회사가 매달 일정액의 고정급을 주면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한 점 역시 근로자성을 뒷받침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경기지노위 부당해고 구제 신청 과정에서 B씨가 근로자에 해당함을 전제로 해고의 정당성만 다퉜다”며 “그런데도 원심이 피고인을 B씨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공소사실을 무죄로 인정한 것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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