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IRA(아일랜드 공화국군)활동 혐의로 수감된 양심수들이 1981년 3월부터 당시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를 향해 자신들을 일반범죄자가 아닌 정치범으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며 집단 단식투쟁을 벌였다. 3월 1일 보비 샌즈가 단식을 시작했고, 5월 5일 그가 사망했다. 이 집단 단식투쟁은 200일 이상 진행된 끝에 10월 3일 종료되었는데, 수십 명이 참여한 이 릴레이 단식투쟁에서 보비 샌즈를 비롯한 10명이 결국 사망했다. 이런 희생 끝에 죄수복을 입히지 말라는 등 5개항의 요구는 대부분 수용되었다. 이 투쟁을 계기로 북아일랜드 독립운동은 한층 치열해졌다. 이 단식투쟁의 희생자들은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에게 순교자로 남아 있고 오늘날에도 해마다 5월이 되면 그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 “무너지는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라고 하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투쟁에 그들과 같은 결기를 느낄 수 있을까?

‘단식투쟁’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박관현 열사다. 아일랜드 민족해방군의 전사들이 옥중 단식투쟁으로 사망한 이듬해에 한국에서는 박관현 열사가 옥중 단식투쟁을 하다가 세상을 떴다. 단식 50일째였다. 5월 항쟁 직전인 5월 14~16일 광주시 대학생들이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민족민주화 성회’를 열고 저녁에는 횃불 시가행진을 했는데, 그는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이 집회와 시위를 이끈 지도자였다. 5.18 광주항쟁 기간 피신해 있었던 박관현 열사는 수배자가 되어 상경하여 공장에 들어가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이는 그의 노동자계급 지향성을 보여준 모습이다. 그는 들불야학 강학이기도 했다. 그는 82년 4월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고, 9월7일 ‘내란예비음모’ ‘내란 주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징역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82년 8월부터 교도소 내 처우개선과 5.18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10월 10일 전남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12일 사망했다. 그는 지금 망월동 묘역에 묻혀 있다. 이재명의 단식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진정성을 느낄 수 있을까?

1970~80년대에 비전향 장기수들이 폭압적 전향공작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집단단식투쟁을 했는데, 1980년 그 과정에서 두 분이 사망했다. <녹슬은 해방구>라는 대하소설에 그 얘기가 실려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은 감옥 밖에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재명의 단식에 이런 단식투쟁과 비견되는 처절함이 있을까?

죽음과 연결되지 않은 정치인의 단식투쟁도 여럿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다. 1983년 5월 18일 광주민중항쟁 3주기를 맞이하여 전두환에 의해 가택연금된 김영삼은 언론통제 전면 해제, 정치법 석방, 해직인사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5개항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전개했다. 김영삼의 단식은 일정하게 전두환, 노태우의 군홧발에 짓밟힌 민주화의 열망을 다시 불러일으키게 만든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재명의 단식은 이런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19세기 중남미는 스페인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현지출신 백인들(크리오요)이 지배했을 뿐 원주민들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스페인 식민지배를 현지 백인 대농장주들의 과두제로 대체했다. 이런 상태에서 19세기 후반 보수주의 당파와 자유주의 당파가 치열하게 권력쟁탈전을 벌였다. 콜롬비아의 경우 이 투쟁의 극치가 1899년 시작된 이른바 ‘천일 전쟁’이었다. 이 내전으로 십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의미 없는 소모전에 지친 과두 지배계급은 이후 협치를 도모했다. 그러자 두 당의 협치에서 배제된 민중들이 계급투쟁으로 떨쳐나섰다. 이것을 대표한 단체의 하나가 민족해방군(ELN)이었다. 현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그 단체 출신이다. 이런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이 이 대표의 단식투쟁은 지지투쟁을 격화시키면 여야 협치로 이어질 것이다. 그의 요구는 사실 협치호소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은 돼도 별볼일 없고 안돼도 별대차 없는 협치를 추구할 게 아니라 자신의 계급투쟁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군부와 손잡은 태국 탁신도 참고할 때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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