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나는 고 박원순 서울시장 재임 시절 서울에 살면서 박 시장 정책에 대부분 동의했다.

대리운전기사와 퀵서비스, 생활설계사 등 사무실 없이 노동시간 대부분을 거리에서 보내는 이동노동자를 위한 쉼터는 박 시장 때인 2014년 3월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 인근에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서초쉼터’로 처음 문을 열었다. 플랫폼에 매달려 사는 이동노동자가 급증한 지금은 전국에 이런 쉼터가 30개 넘게 들어섰다.

동사무소(주민센터)는 박 시장 때 ‘찾동’(찾아가는 동사무소)으로 탈바꿈하면서 지방정부의 대시민 서비스를 한 차원 높였다. 주민참여예산 제도도 박 시장 때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두 가지 정책은 늘 아쉬웠다. 시민들의 심야 이동을 늘리는 대중교통 연장 운행과 공중 보행로(공원) 정책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전 세계를 돌며 배낭여행을 많이 했지만 한국처럼 밤 12시 이후 길거리에 사람이 많은 나라를 못 봤다. 우리와 기질이 닮았다는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밤 10시 넘으면 인적이 끊긴다. 대중교통 연장 운행은 당장은 저소득 노동자의 교통비를 줄여주지만, 세계 최장시간 노동국가라는 오명을 계속 달고 살도록 부추긴다. 박 시장은 장시간 노동을 줄이는 데 동의하면서도 임기 내내 대중교통 심야 연장 정책을 폈다.

공중 보행로나 고가도로 공원화 정책도 많이 아쉽다. 1970년에 설치한 서울역 고가차도가 수명을 다하자 박 시장은 2017년 5월 ‘사람’ 중심의 녹색 시민 보행공원을 내걸고 ‘서울로7017’로 탈바꿈했다. 박 시장은 2014년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을 방문한 뒤 공중보행로에 집착했다.

뉴욕 시민들은 1999년 ‘하이라인의 친구들’이란 단체를 만들어 낡은 고가 철로를 보존·재생하는 대중운동에 나서 지방정부와 10년 논의 끝에 2009년 ‘하이라인 공원’ 1단계를 완공했다.

하이라인 공원은 시민이 직접 나서 긴 시간 논의 끝에 완성됐지만 ‘서울로7017’은 시장 주도로 1년 만에 완공했다. 둘은 거버넌스 자체가 다르다. 나는 ‘서울로7017’을 여러 번 가봤다. 6~9월엔 햇볕 피할 그늘이 없어 숨이 막혔고, 겨울엔 경사진 빙판길에서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1년에 5개월쯤은 걷는 것 자체가 고역인 보행로를 뭐가 급해 1년 만에 후다닥 만들었는지.

종로 3가에서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세운상가 진양상가 등 4개 상가를 남북으로 연결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박 시장이 시작해 지난해 오세훈 시장이 완성했다. 그러나 SBS는 지난 8월24일 “사람도 화장실도 없어 … 1천109억 혈세 낭비” 기사에서 세운상가 공중보행로 무용론을 폈다. SBS는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공중보행로 주변엔 청년 창업가게들이 즐비한데 문을 닫았거나 물건만 쌓아둔 상태라고 했다. 통행량은 2017년 박 시장 때 예측치의 5~17%에 불과하다.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14세기 말 서울이 조선의 수도가 된 이후 600년 넘게 이어온 시민들의 보행 습관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600년 넘게 서울 사람들은 종로, 청계천로, 을지로를 동서로 오갔다. 여기선 버스나 지하철도 대부분 동서로 이동한다. 동선을 따라 상가가 배치돼 있다. 그러나 세운상가 공중보행로는 종로 3가에서 충무로까지 남북으로 이어져, 600년 서울 시민의 생활 패턴과 맞지 않다.

그렇다고 오세훈 시장처럼 모든 걸 토건 세력에게 맡기는 정책은 박 전 시장보다 더한 흉물을 낳을 뿐이다. ‘기승전 전 정권’이 문제라는 현 정부 기조대로 ‘서울로7017’ 철거 얘기도 들린다.(한국일보 8월23일 10면 ‘서울역 등 국가상징공간 조성… 서울로7017 철거 가능성도’)

지금이야말로 시민이 논의 구조에 직접 참여하는 장기 도시계획을 세울 때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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