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18일 대법원은 아이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을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인정했다. 아이돌봄서비스란 부모의 맞벌이 등으로 양육공백이 발생한 가정의 만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아이돌보미가 찾아가서 돌봄을 제공하는 것으로 2012년 ‘아이돌봄지원법’을 제정하면서 국가가 지원하는 서비스가 됐다.

아이돌봄서비스의 실제 운영을 살펴보면, 지방자치단체체장으로부터 지정받은 서비스제공기관이 아이돌보미 모집공고를 하고 면접에 통과한 사람들로 하여금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 자격을 취득한 아이돌보미는 법에 따른 표준계약서 양식으로 서비스제공기관과 계약서를 쓰는데, 여기에는 활동의 내용, 활동기간·장소, 보수, 계약해지 등의 사항이 정해져 있다.

아동의 보호자가 서비스를 신청하면 서비스기관은 그 신청내용을 소속 아이돌보미에게 공지하고, 아이돌보미들은 해당 가정에서 일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된다. 그러면 서비스기관이 적합한 아이돌보미를 해당 가정에 배정한다. 아이돌보미는 활동과정에서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서비스기관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상세한 업무내용을 기재한 활동일지를 제출해야 하며, 서비스기관의 월례회 등에 참석해야 한다.

아이돌보미들이 미지급 수당 등을 청구한 사건에서 1심은 이들을 근로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2심인 광주고법은 아이돌보미의 근로자성을 부인했는데, 아이돌보미가 신청 가정에 일하러 갈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 주된 이유였다. 뿐만 아니라 표준계약서의 계약해지 사항, 활동일지 및 월례회 등은 모두 ‘권고’에 불과할 뿐이어서 서비스기관이 지휘·감독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아이돌보미들이 원치 않는 조건의 가정을 신청하지 않을 수는 있었지만 일단 특정 가정에 배정된 경우 근무시간과 장소가 정해졌으므로 근로자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아이돌보미가 3개월 이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원하는 가정에 배정이 제한되고, 다시 활동을 원할 경우 면접이나 교육 재이수 등을 거쳐야 하므로 “사실상 아이돌보미가 돌봄활동을 계속 수행하도록 유인하는 방안이 마련돼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번 판결로 사실상 공공서비스부문인 아이돌봄지원법상 노동자들이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하지만 이번 판결의 의미는 돌봄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에 그치지 않는다. 근로자성과 관련된 핵심 쟁점이 “노동자가 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한 선택권을 갖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비슷한 질문에 맞닥뜨리곤 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 인정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7월 서울행정법원은 쏘카㈜가 운영하는 ‘타다’ 서비스를 수행한 기사들을 근로자로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을 취소했다. 주된 논거 중 하나가 ‘타다 드라이버’가 타다 앱이 지정하는 배차를 수락하거나 거절할 자유가 있다는 인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타다 기사의 배차 수락 건수, 운행실적은 드라이버에 대한 평가 요소로 정해져 있었다. 배차 거부나 콜(호출) 미수락이 평균을 초과하면 경고·대면교육·계약해지 등 조치가 가능했다. 그래서 행정법원도 “타다 앱에 의해 구체적 업무 내용이 지정되고 사실상 강제되는 측면이 일부 존재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이것은 타다 서비스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연적 측면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근로자성을 부인했다. <매일노동뉴스 2022년 7월11일자 “플랫폼기업의 책임 회피에 면죄부 준 ‘타다’ 판결” 기사 참조> 승객에게 신속하고 표준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타다 서비스’의 성공을 위해 평점·강제배차·매뉴얼 등을 통해 타다 기사가 사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계속 일하도록 유인하는 것이 타다의 본질적 사업요소란 사실을 외면한 것이다.

일자리를 쪼개서 다수 노동자들이 일자리(일감)를 둘러싸고 서로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 오늘날의 플랫폼 노동이다. 소득을 위해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하면 낮은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멀티잡’을 할 수밖에 없고, 기업은 풍부한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반면 노동자들은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한다”는 환상 속에서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권리마저 부정당한다. 이번 아이돌보미 판결은 이런 노동자들이 가지는 ‘선택권’은 그들의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진실을 간파한 법원의 통찰력을 보여 줬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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