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약 13년간 여러 유해요인에 노출돼 일하다가 희귀암(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에 걸린 서울교통공사 노동자에게 법원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라 연구결과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업무와 질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29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문중흠 판사)은 서울교통공사 직원 A(48)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공단은 1심에 불복해 지난 28일 항소했다.

A씨는 2002년 12월 서울교통공사에 입사해 기계설비의 유지관리와 보수 업무를 하다가 2016년 1월 ‘미만성 거대 B세포 림프종(DLBCL)’을 진단받았다. DLBCL은 혈액암의 일종으로 악성 림프종(비호지킨 림프종)의 40%를 차지한다. 진행 속도가 빠르지만 조기 검진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희귀암을 진단받은 A씨는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불승인됐다. 공단은 “약 13년간 지하철에서 기계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하면서 라돈과 극저주파 전자기장에 노출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야간 교대근무를 실시한 사실이 확인된다”면서도 “신청상병이 발병했다고 보기에는 과학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는 고용노동부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의 재심사도 기각되자 2020년 9월 소송을 냈다. 그는 “라돈과 극저주파 전자기장 등 여러 유해요인에 13년 이상 노출됐고, 상병 발병 당시 만 41세로서 호발 연령보다 상당히 젊다”고 주장했다. 관련 치료이력과 가족력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법원은 공단 판정을 뒤집고 A씨 손을 들어줬다. 림프종과 유해요인 사이의 의학적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문 판사는 “산재보험은 산업안전보건상 위험을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며 “근로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으로 산업의 발전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점이라는 제도 취지가 판단에 있어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특히 A씨가 자기장이나 라돈 등 유해물질에 수년간 노출됐다고 봤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에 따르면 A씨는 윤활유·냉매 등 화학물을 취급하며 터널·집수장·배수펌프장에서 높은 농도의 라돈에 노출됐다. 문 판사는 “설령 라돈·자기장 등이 제한적 증거를 가지는 발암물질로 제시되더라도 A씨가 장기간 여러 유해인자에 복합적으로 노출됐고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는 등 작업환경 유해요소도 복합적으로 작용해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판시했다.

법원 감정의가 자기장 노출과 야간근무 환경의 작업이 상병을 유발 또는 촉진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제시한 소견도 산재 판단을 뒷받침했다. 문 판사는 “A씨의 흡연력, 비호지킨 림프종 특성 등 공단이 주장하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법원 감정의의 의학적 소견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A씨를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희귀질환의 경우 산재로 인정받기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이번 판결로 인해 노동자들이 각종 첨단산업현장에서 새롭게 발생하는 유형의 희귀암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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