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운 공인노무사 (에이원노무법인)

나는 30개월, 그리고 6개월 된 아기 둘을 키우고 있는 ‘워킹대디’다.

맞벌이인 우리 부부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일하면서 육아는 어떻게 하느냐”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보통 “그래서 둘 다 있는 대로 갈리고 있다”고 거리낌 없이 푸념을 내뱉게 된다. 이에 덧붙여 “일과 가정의 양립은 불가능하다”고 시니컬한 답변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실 낯간지러워서 하지 못하는 숨겨 둔 말 한마디가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린이집 하원시간부터 우리의 퇴근시간까지 큰 아이를 사랑으로 돌봐 주신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큰 아이가 둘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까지 헤아리면서 신경을 써 주시고, 돌봄 선생님은 유난히 우량아인 둘째가 칭얼거릴 때에도 눈맞춤 해 주시며 어르고 달래 주신다. 아이들이 잘 크고 있는지 종종 안부를 묻고, 아이들이 필요한 것들을 무심히 챙겨 주며 아이들 때문에 때론 조금 늦게, 때론 조금 일찍 출·퇴근을 하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 주는 우리 부부의 직장 동료들도 고맙다. 지인들은 일과 육아에 치여서 전혀 체력이 회복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주말에 기꺼이 놀러 와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 주며 아이들의 다정한 이모·삼촌들이 돼 준다. 얼굴은 모르지만 유아차만 보면 속도를 줄이는 자동차 속 운전자, 크게 방향을 틀어 비켜 가는 운전자까지. 우리 부부가 많이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지만, 수상소감처럼 꼭 언급해야 할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덕분에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신의 우주를 넓혀 가고 있다. 우리 둘이서만 했다면 못해냈을 일이다.

고마운 여러 사람들 중에 특별히 언급하고 싶은 이는 직장 동료들이다. 육아는 계산이 안 서는 일이다. 아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온갖 변수의 총합이다. 그들의 안정적인 울타리가 돼 주기 위해서는 그 변수를 부모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 예측되지 않는 상황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이런 육아를 버티는 힘은 모순적이게도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아빠!” 날 발견하면 목청껏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큰 애를 품으로 안고 들어 올리면 우습게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육아의 힘듦을 지워 주는 아이의 사랑을 받으며 부모는 육아를 해낸다.

그러나 그 부모의 직장동료들은 사정이 다르다. 직장 동료들은 그런 보상을 얻기도 어렵고, 본인들이 육아를 같이 하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하기도 한다. 단순히 동료가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근로시간단축과 같은 법정제도를 사용할 때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가 아플 때, 어린이집이 가기 싫다고 할 때, 할머니·할아버지가 부재할 때, 와이프가 바쁠 때 등 대비하기 어려운, 대체방법 역시 준비도 있지 않은 상황에 나는 불가피하게 육아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동료의 이해와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들이기도 하다. 이들의 일방적 도움을 받아가며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의존이 당연한 것일까, 내 동료들은 정말 괜찮은 것일까 하는 우려와 두려움도 엄습한다. 그럼에도 나를 민폐가 아닌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주는 동료들 덕분에 나는 어떻게든 일과 육아를 하면서 지내고 있다. 아이는 사회가 키워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아주 진심으로 하게 되는 요즘이다. 노무사라는 직업으로 일을 하면서 운 좋게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 덕에 육아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일을 하고 있다.

회사(會社)는 사회(社會)와 동일한 한자를 쓴다. 회사는 회사라고 선을 긋는 말들도 많이 쓰지만 실제 하루의 많은 시간을 우린 회사에서 동료들과 보낸다. 그러니 퇴사사유의 1위가 동료들과의 인화문제라는 것에도, 직장내 괴롭힘 문제가 최근 노동관계 문제들 중 주요 화제라는 사실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동료란 존재가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리 우습지도, 작지도 않다. 나의 동료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내 동료들은 나의 육아를 함께해 주는 사람들, 든든한 육아 파트너들이며 나의 육아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동료들과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동료를 둔 사람들과 나의 동료들에게 수많은 워킹맘·워킹대디를 대신해 함께 아이를 키워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이 에세이를 기회 삼아 전한다.

“육아를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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