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푸른 변호사(법무법인 강남)

오랜만에 백화점을 방문했다가 “백화점은 응답하라!”는 제목의 현수막을 보게 됐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가서 읽어 보니 일방적 연장영업 폐지, 공동휴식권 보장, 정기휴점 확대, 직원용 시설환경 개선, 고객응대 근로자 매뉴얼 마련·시행 등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의 당연한 요구사항과 함께 “본사는 권한이 없다고 한다!”는 문구가 같이 적혀 있었다.

백화점과 면세점에 근무하는 판매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유명브랜드의 한국법인 또는 수입회사에 소속돼 있다. 하지만 많은 산업의 노동자가 직면하고 있는 원·하청 관계와 마찬가지로 근무시간과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원청인 백화점과 면세점이다. 코로나19가 약화하면서 해외여행을 나가는 사람이 늘자 면세점은 코로나19 이전으로 영업시간을 복구하는 것을 넘어 연장영업을 결정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줄어든 인원은 충원되지 않은 채 영업이 ‘정상화’돼 많은 판매노동자들은 1명 혹은 2명으로 매장 운영을 감내하고 있는 실정이다. 백화점 또한 월 1회 정기휴점일조차 VIP 행사 등의 핑계를 대며 제대로 지키지 않고 연장영업을 강요하고 있다. 현재 유통산업발전법은 대형마트에 대해서만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백화점·면세점 판매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판매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감정노동의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매장을 비워서는 안 된다는 미명하에 식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장시간 서서 일하면서 하지정맥류와 방광염 등의 질환을 겪는 일이 많았다.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이를 대신하는 직원 전용 화장실이나 휴게실은 매우 열악하다. <매일노동뉴스>에도 연재되고 있는 만화 ‘썰비의 매장스토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판매노동자들이 소비자들의 각종 폭언과 무리한 요구를 견뎌 내는 동안 회사와 원청은 통합 매뉴얼이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안내 없이 방관하고 있다.

이런 노동환경을 개선하려고 판매노동자들은 산별노조인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조를 결성하고 백화점 및 면세점에게 단체교섭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과 면세점은 자신들의 직원이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노조는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한다.

노동위원회의 올바른 결정을 기대한다. 노조가 지적하는 것처럼 결국 이는 아직도 본회의에 계류 중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과 연관된 문제다. 근로환경을 실질적·구체적으로 결정하고 업무를 지시하며, 노동자의 노동으로 인한 이익을 가져가는 원청이 노동자의 요구에 응답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청이 형식적 사용자인 하청업체 핑계를 대고 하청업체는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목격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받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첫걸음인 노조법 2·3조 개정안 처리가 또다시 8월 임시국회 이후로 미뤄진 것에 매우 유감을 표한다. 올해 정기국회에서는 반드시 해당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국회에 촉구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