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혜경 노동법 박사
▲ 유혜경 노동법 박사

미군이 남한을 점령할 당시에는 구체화된 노동정책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만 해방 직후 번지기 시작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에 미군정은 일정한 대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몇몇 법령과 지침을 내렸다. 여기에서는 단결권과 단체행동상에 대해 가장 중요하게 미군정의 노동정책을 확인할 수 있는 군정법령 19호2조 ‘노무의 보호’와 군정법령 97호 ‘노동문제에 관한 공공정책(公共政策) 및 노동부 설치’에 관한 규정을 주요하게 살펴보겠다.

사실상 단결 금지 정책
법령 19호2조 ‘노무의 보호’

해방 후 사회경제적 혼란, 노동관계 악화, 특히 빈번하게 발생하는 노동쟁의에 대응해 미군정은 1945년 10월30일 노동정책 틀을 규정한 법령 19호를 중대방송 형식으로 공포했다.

군정법령 19호2조의 주요한 내용은 첫째 개인이나 집단으로서 직업을 순수(順受)하고 방해없이 근무하는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고 이런 권리를 방해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 둘째 공업생산의 중지 또는 감축 방지는 조선 군정청에서 민중생활상 필요불가결한 일이라는 것, 셋째 이런 조건에 대해 발생하는 쟁의는 군정청에 설치된 조정위원회에서 해결할 것이니 그 결정은 최후적이자 구속적이며 그 사건이 노동조정위원회에 제출돼 해결될 때까지 생산을 계속할 것이다.

군정법령 19호2조 성격을 둘러싸고 실질적인 ‘스트라이크의 금지법’이라고 보는 견해와 ‘사실상의 단결금지정책’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나뉜다. 실질적인 스트라이크금지법이었다고 보는 견해는 2조 후단에서 모든 쟁의를 조정, 특히 강제중재에 회부하도록 규정해 일체 쟁의행위가 사실상 금지됐기 때문에 군정 초기의 노동정책은 ‘소극적인 노조 결성은 용인하나 노동쟁의는 억압하는 체제’ 즉 ‘노동조합 용인, 노동쟁의 억압 체제’였다고 주장한다.

사실상의 단결금지정책이라는 견해는 다음의 두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조정제도’에 의해 각 개인의 총화로서의 단결에 의한 파업조차 논리적으로 금지하기 때문에 단결의 방임보다도 낮은 단계의 노동정책으로서 노동조합 그것 자체를 불법화하지 않는 정도에서 모든 노조활동을 금지시키는 ‘사실상의 단결금지’ 정책이라는 것이다. 둘째, 1945년 10월30일 군정법령 19호2조가 공포된 이후 1946년 5월6일 발표된 군정법령 19호에 대한 ‘사법부의 해석’이 본질적으로 단결금지를 표방한다는 주장이다. 그 해석에서는 “비상조치로서 노동자는 법령 19호2조로 해금 노동쟁의를 진행하고 또한 노동조합주의의 인정된 방법을 이용할 특권을 탈실(奪失)했다”고 못 박고 있는 만큼 이는 ‘노동조합 일반의 활동을 금지’한 것으로서 ‘사실상 단결 금지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군법령 19호2조는 중요하게 군정청에 설치된 ‘조정위원회’를 통한 노동관계 문제의 해결을 강제해 단순한 ‘노조활동 방임’ 차원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노조활동 일반에 대한 개입 강제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사실상의 단결 금지 정책이다. 군법령 19호2조에 대한 당시 사법부의 해석은 법령 자체의 형식적 규정이나 노동행정기구 내부방침보다 본질적 의미를 갖는다. 사법부 해석에 따르면 ‘비상조치로 노동조합주의의 인정된 방법을 이용할 특권을 빼앗겨 그 권리를 잃는 것’이다. 사실상 노조의 일반적인 활동을 금지한 것으로서의 ‘사실상 단결 금지 정책’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노조의 교섭권을 인정한 군법령 97호

미군정은 1946년 7월12일 새로운 노동정책이 예고됐다. 시장경제 질서 조성과 동시에 ‘비상시국’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금까지 이어진 노조 활동과 노동쟁의를 금지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민주노동조합을 적극 육성한다’라는 방침을 예고했다. 이어 7월13일 법령 97호를 발표했다.

새로운 노동정책이 담긴 법령 97호는 모든 내용을 단 4개 조문에 요약한 규정으로 법령이라기보다는 형식상 한시적 대응책을 정리한 비망록과 같은 모습을 띤다. 1조 정책선포, 2조 노동행정기구의 확충, 3조 노동관계의 감독 권한, 4조 처벌규정 등을 담았다. 군법령 97호의 가장 중요한 조항은 1조 ‘정책선포’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항은 민주적 노동단체의 육성을 지원한다. 2항은 모든 노동자는 사용자나 그 대리인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단체를 결성하고 이에 가입하거나 노동조합연합회를 조직 또는 가입해 다른 노동조합을 지원하거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고용조건을 고용계약기관과 협의할 목적으로 스스로 선출한 대표자를 지명할 권리가 있다. 3항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간 평화로운 교섭으로 임금, 노동시간, 그 밖의 고용조건 등에 관한 협약 체결을 권장한다.

군법령 97호는 이전의 법령 19호2조와 다르게 ‘민주적 노동단체의 육성을 지원한다’라고 밝혀 노동조합의 인정을 실제화하고 있고 ‘고용조건이나 노사 간 평화적 교섭을 권장’ 조항을 통해 노동노조 활동 기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등 진전된 모습을 보인다.

군법령 97호1조의 규정은 미국의 전국노동관계법(National Labor Relations·와그너법)의 7조를 거의 그대로 따른 것이 특징이다. 보다 상세히 보면 우선 1조의 규정은 적어도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 금지 규정이나 단위교섭 제도 기타 배타적 교섭대표 제도를 미군정이 정책수단으로 인정한 것이 틀림없다. 다만 와그너법 7조 규정과는 달리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는 빠져 있는데 이 점은 단체행동권을 법인하지 않으려는 미군정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평은 1조2항에 규정된 ‘자율적 노동단체’란 사용자로부터의 자립이라기보다는 ‘외부세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정하고 기존 조직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결국 전평에 대항하는 새로운 노동단체의 육성을 상정한 것이기 때문에 법령 97호는 전평의 정상적인 노조 활동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대열을 분열시키는 데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사실상 이 법령이 공포된 후부터 노동조합의 조직이 늘어나 동일 사업장 내에 2개 내지 3개의 노동조합이 속출하는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법령의 공포로 노동문제에 관한 기본정책이 법적으로 확립돼 단결권과 노사 간 집단적 교섭, 기타 단결 활동이 합법화됐던 것으로 평가된다.

노동법 박사 (labork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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