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고령화 시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홈페이지에는 노인장기요양제도의 목적이 설명돼 있다.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에게 신체활동과 가사활동을 지원해 노후의 건강증진과 생활 안정을 도모하고 가족의 부담을 덜어 줘 국민 삶의 질을 향상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당연히 ‘국민 삶의 질 향상’일 것이다. 장기요양에 대한 사회적·국가적 책무가 강조되는 시대라는 점도 이 설명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장기요양에 대한 정부의 책임은 점차로 축소하고, 시장에 내놓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 생각만 가득한 것 같다.

보건복지부는 7월19일 ‘신노년층을 위한 요양시설 서비스 활성화 방안’이라는 이름의 공청회를 기습 개최했다. 그 내용은 요양시설의 임대를 허용하는 내용이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사회보험제도인데도 이 제도의 운영을 민간에 맡겨 왔다. 그 결과 영세한 시설의 난립, 노동자와 노인 권리의 침해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요양시설의 임대 허용 명분은 ‘지대가 높은 강남권 등에 요양시설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실제는 보험사들이 계속 요구해 왔던 것으로 투기자본 유입의 길을 여는 것이다. 결국 노인들의 건강과 안정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업체들이 요양시설을 운영하는 것이니, 노인들의 권리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8월17일, 제3차 노인장기요양계획을 발표했다. 5년마다 장기요양제도의 방향을 결정하는 계획이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을 보면 장기요양제도의 문제로 제기돼 있는 장기요양의 질을 높이는 방안,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 그를 위한 재정 확대 방안은 담겨 있지 않다. ‘선택권 강화’를 빌미로 비급여를 확대해 내는 돈에 따라 차별적으로 요양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만들고, 요양시설의 임대를 허용하는 등 장기요양 분야를 시장화하는 내용이 주로 담겨 있다. 장기요양제도에 대한 국가책임을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노인의 안전과 건강을 이윤의 도구로 만들어 버리는 정책 방향에 대해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노인장기요양제도에 대한 공적 책임을 이야기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제도의 공공성을 위해 노조와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장기요양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시장화가 점점 심각해지는 시대에 공공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힘이 있을까 우려되기도 하지만, 더 이상의 후퇴는 막아 보자는 심정이기도 하다. 우선 개정안에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국공립 요양시설 확대’를 담고자 한다. 지금처럼 예산을 삭감해 사회서비스원의 기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또한 장기요양시설이 난립해 경쟁하는 지금, 장기요양시설에 대한 지정갱신 기간을 축소해, 문제 있는 기관 퇴출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인돌봄의 질은 돌봄노동자의 숙련과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노인장기요양제도는 돌봄노동자의 희생에 의존해 제도를 지탱하고 있다. 오랜 경험을 쌓은 노동자의 숙련과 근속이 인정되고, 안정적인 노동시간이 보장되며, 임금 기준이 제대로 수립돼야 노인돌봄 노동자들의 역량도 축적될 수 있다. 따라서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요양보호사 등 노인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지위 향상에 대한 조항을 담고자 한다. 또한 요양보호사 등 노인돌봄 노동자를 장기요양제도의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 장기요양위원회 등 중요한 결정구조에 장기요양요원을 대표하자는 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장기요양제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시민들의 사회보험료, 정부 지원 등으로 운영되는 공적인 보험제도를 민간에 위탁해 돈벌이 수단으로 만든 것 자체가 문제다. 이것을 바꾸자면 노인장기요양보험법을 전부개정해 새롭게 만들어야 하겠지만, 시장화의 거센 흐름 속에 아직은 힘에 부친다. 그래서 일부 개정안을 내는 데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더 망가지는 것을 막고, 노인의 권리와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지난한 싸움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마련한 법안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꼭 이 법안이 논의되고 통과되기를 바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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