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수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하청업체 관리자의 갑질에 시달리던 하청업체 근로자 A는 하청업체에 시정을 요구했으나 묵살되자, 원청업체에 하청업체에 대한 감독 강화를 촉구하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청업체는 진정서에 첨부된 업무 자료를 문제 삼고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으로 A를 고소했다. 그러자 A는 원청업체 본사 사무실 앞에서 농성을 개시했다. 그 사이 검사는 A의 혐의가 일부 인정된다고 보고 약식기소 했고 곧 약식명령이 내려졌다. 당시 부재 중인 A를 대신해 배우자가 보충송달로 약식명령문을 받았으나 배우자는 그 사실을 곧바로 A에게 알리지 않았다. 농성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A는 뒤늦게 약식명령문을 확인하고 정식재판청구권회복청구를 제기했으나, 보충송달이 유효하다는 이유로 기각결정을 받고 말았다. 하청업체는 A를 해고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가족이 약식명령문을 받아서 정식재판 청구를 하지 못했다는 사례가 무수히 나온다. 이런 사례에서 약식절차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통상 경미한 사건에서는 검사가 약식기소를 하고 법원은 공판절차 없이 서면심리만 해서 벌금형을 과하는 약식명령을 한다. 이 약식명령은 불복할 수 있다. 다만 기간의 제한이 있는데, 피고인은 “약식명령의 고지를 받은 날로부터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여기서 고지는 약식명령문의 송달을 말한다.

법정에서 열리는 통상의 공판절차에서는 재판장이 판결문의 주문을 낭독하고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판결이 선고(고지)돼 효력이 발생하지만 법정에 갈 일이 없는 약식절차에서는 이를 송달로 갈음한다.

형사소송법은 송달에 관해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 민사소송법은 일정한 경우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 문서를 교부해도 유효한 송달로 본다. 흔히 보충송달이라고 한다. 보충송달은 당사자의 자택에 방문했는데 당사자가 마침 부재해서 동거하는 가족이 대신 교부받는 것 등을 말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통상의 공판절차는 당사자(피고인)의 출정을 요구하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는 재판의 모든 심리과정과 선고 결과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7일의 상소기간을 지키는 것도 문제가 없다. 문제는 검사의 기소 여부 통지 방법이 간략히 나와(전화, 문자메시지, 일반우편 등으로 가능), 당사자로서는 약식기소된 사실도 모른 채 약식절차가 진행될 수 있고, 법원은 대체로 약식기소 취지에 따라 약식명령을 발하게 되는데 이때 공소장에 기재된 주소로 약식명령문의 송달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약식명령문을 당사자가 직접 수령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식명령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니, 정식재판 청구기간의 도과로 약식명령을 다투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는 어렵고, 설령 정식재판 청구기간이 도과하더라도 제도를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족이 보충송달 방법으로 약식명령을 수령하는 경우, 당사자로서는 약식명령 사실을 알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당사자 본인과 달리 가족은 봉투를 즉시 개봉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경과하고 나서 당사자에게 알릴 수도 있다. 가족은 당사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당사자가 일정 기간 출타 중인 때는 약식명령 사실을 당사자가 알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당사자 본인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약식명령이 확정되고 더는 불복할 수 없다면(정식재판청구권회복청구를 할 수 있으나 인정범위는 제한적이다) 이는 재판의 효율성만 앞세워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것은 아닐까. 정식재판 청구기간을 늘리는 것으로는 당사자 불이익이 해소되기 어렵다. 약식명령문의 송달을 민사소송법상 보충송달로도 가능하도록 한 것 자체가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에 반하고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는 약식명령문을 건네준 날 왜 하필 집에 없었냐고 국민을 탓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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