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아 공인노무사 (이산 노동법률사무소)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학부모 민원에 대한 부담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보도가 났다. 지인 모임에 갔더니 다들 이 사건을 자기 일처럼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중 초등교사가 직업인 사람은 없었지만, 대부분 고객을 상대하는 업무를 해본 경험은 있었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나 폭언을 홀로 대응하는 게 힘들어 직업을 바꾼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 사건은 사람 상대하는 일을 해본 노동자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노동권 침해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건 보도 이후 교사들의 폭로가 이어졌다. 학생 보호자들로부터 퇴근 후 연락이 안 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채점시 빗금이 아니라 별표를 해 달라’ 라거나 ‘프로필 사진을 바꿔 달라’는 등 다양한 요구를 받고 있었다(폭언이나 폭행에 이르지 않더라도 노동자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방법이 이렇게나 많다니!). 교사 또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로서, 노동시간 외에는 휴식을 취하며 건강을 지킬 수 있어야 하고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다는 당연한 말을 되뇌이게 했다.

문득 수습노무사 시절 경험이 떠올랐다. 전화로 노동 상담을 하던 날이었다. 전화 벨소리만 울려도 긴장되던 때였지만 그날은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성심성의껏 상담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녹음과 같은 증거자료가 필요할 수 있으니 준비하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내담자가 갑자기 ‘아이폰인데 어떻게 녹음을 해! 당신 같으면 할 수 있겠어!’라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하마터면 사과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답답한 상황에 대한 화풀이를 내게 한 것인데, 당시엔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것인지 자책 회로부터 돌렸다.

다행히 심상치 않은 기류를 느끼던 선배들이 바로 다가왔다. 상황을 확인하고는 감정노동자 보호조치의 일환이라며 업무에서 분리시킨 후 피자(!)를 사줬다. 물론 피자뿐 아니라 ‘그럴 땐 그렇게 화를 내니 당황스럽고 계속 화를 내면 상담을 이어나갈 수 없다고 말한 후 끊어도 된다’는 가이드도 줬다. 돌아보면 당시 일터에서 나를 보호해 준다는 감각 덕분에, 지금 연간 1천여건의 상담을 하면서도 크게 힘들어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속한 일터가 특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노동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인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한 결과이지 않을까.

교사의 노동권도 교사 개인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게 아니라, 사용자인 교육당국이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단계부터, 문제 발생시 사후 조치까지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문제가 ‘교권’ 보호라는 단어로 회자되면서, 엉뚱하게 학생인권조례 폐지 논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자체에 발생한 교육활동 침해 건수가 조례가 없는 지역과 차이가 없거나 되레 적다는 분석 결과가 보도되었는데도, 여전히 학생인권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게 답답했다.

또한 최근에는 교감과 행정실장, 교육공무직으로 구성된 민원대응팀 구성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데, 과연 이들의 노동권은 잘 보장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대응 주체만 바뀔 뿐, 노동권이 침해되는 현실은 바뀌지 않을까 봐 우려되는 것이다. 적절치 않은 민원이라 판단돼도 일단 수용하고 처리해야 한다면 일선에 있는 노동자는 그가 누구든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결국 누가 민원을 응대하더라도 안전하려면, 근본적으로 적절치 않은 민원은 거부할 수 있고 법적인 조치까지도 가능한 매뉴얼과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 교사를 포함해 모든 학교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적극 보장하겠다는 교육당국의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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