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우현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운영위원장

일상이 비상이다. 지난해 폭우로 발생한 반지하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올해는 오송 지하차도에서 참사가 일어났다. 특정한 공간으로 기억되는 참사들.

그 바깥의 통계를 보자.

올해는 폭우로 숨지거나 실종된 이들이 올해는 50여명, 지난해는 20여명이다.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었던 2018년 여름에는 4천500여명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고, 이후로도 매년 2010년대 초반보다 두 배 가까운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관측 이래’라는 말도 흔한 수식어가 됐다. ‘관측 이래’ 최고 기온, 최장 기간 장마, 최대 강수량, 태풍 발생 최다 등 모두 지난 몇 년 새 집중됐다. 기록적 기상이변은 더 이상 이례적 현상이 아니라 적응해야 할 현실이 됐다. 그 원인이 기후위기의 가시화·가속화에 있음은 물론이다.

전 세계는 2015년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를 통해 지구의 평균 기온이 2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자고 약속했다. 그 약속 이후 3년 만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특별보고서를 내고 1.5도만 올라도 지구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될 수 있다며 2도 목표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이 2050년 전후로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삼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1도 높아졌다. 즉 우리는 비가 오기 전에 지붕을 만들어 둔 것이 아니라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이후에 지붕을 얹기 시작한 꼴이다. 최소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잠기는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이러한 상황의 긴박함으로 말미암아 2019년 9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규모의 기후행동(Climate Strike)이 펼쳐졌다(이 연례적 기후행동은 올해 9월23일에도 예고돼 있다). 이에 한국 정부도 ‘그린뉴딜’ ‘탄소중립 시나리오’ 등을 발표했지만 파격적이고 실효적인 온실가스 감축 정책 수립과 예산 투입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특히 교통 부문에서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은 매우 수세적이며 불성실하다. 한국의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총 9천617만 톤이었는데, 이 중 도로수송이 97%를 배출하고 철도 부문 배출 비중은 0.25%에 그친다. 압도적 차이다. 물론 여기에는 열차가 차량보다 전동화가 많이 이뤄진 것과, 두 교통수단 사이 수송 분담률의 차이도 있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분담률 대비 배출량도 도로 교통수단보다는 철도가 훨씬 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에서 ‘녹색 철도’ 확대 전략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일부 노선 확대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교통 부문 온실가스 감축 전략의 대부분은 내연기관차의 전기차·수소차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녹색교통의 개념은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라는 포드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일 수 없다. ‘광역은 철도로, 지역에선 대중교통으로’ 편리하고 안전한 이동이 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자면 훨씬 더 많은 철도 노선 확충·배차를 위한 공적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

당연하게도, 현재 정부·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SR 부당특혜를 포함한 기이한 경쟁체제 도입 및 우회적 민영화 시도는 위와 같은 ‘녹색 철도’ 이행에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운영되는 철도는 전국을 연결할 수 없다. 공공성을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가 공공성을 상실한 채 시장과 자본의 논리에 빠르게 편입될수록, 시민들 역시 대안교통수단으로 철도 이용을 꺼리게 될 것이 자명하다. 저렴하지도 않고, 편리하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기후위기를 정의롭게 극복하는 일과 고속철도를 합리적이고 공공적으로 운영하는 일은 강한 연결성을 가진다. 공공성에 기반해 철도의 노선을 확대하고 많은 시민들의 이용을 도모하는 것이 전환적 교통정책의 핵심일 것이다. ‘모두의 철도’로 기후위기 시대에 분절된 개인들이 연결되고 서로를 돌보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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