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정 노무사님, 지난번에 검토한 KBS 고용안정협약 체결됐나요?” 얼마 전에 회신했던 언론노조 KBS본부의 질의회신이 생각나서 담당 노무사에게 물었다.

“체결 못 했어요.” 노조 요구대로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면 배임이니, 뭐니 하며 시비라더니 결국 사장 등 경영진이 부담을 느껴 체결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최근 윤석열 정부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에 기존 경영진의 전면적 교체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KBS 노동자들은 대대적인 배치전환에 인적 구조조정까지 벌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본부가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사측에 요구한 것인데, 이것이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무슨 자유언론 운운하는 단체가 부패행위로 국가권익위원회에 신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별일이다. 노동자(조합원)를 위해서 활동하는 노동조합이 고용불안이 예상돼 고용안정을 위한 협약 체결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사측이 이를 수용하는 것이 무슨 배임이고, 부패행위인지 참으로 별일이었다.

2.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 KBS본부가 KBS 사측과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KBS에서 노사가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위해 협의를 하던 8월 초 중앙일보는 이렇게 KBS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노조의 고용안정협약 초안에는 “노사는 공사의 사업 및 기업변동을 포함하여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 및 경영 환경의 사정 변경으로 인한 해고 등의 구조조정으로 근로자의 신분 변동 등이 예상되는 경우에 본 ‘고용안정위원회’를 개최해, 고용안정을 위한 방안 마련 및 시행을 의결로써 정한다”고 적혀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고용안정위는 △노사협의회 위원 중 각 4인으로 구성하고 △노사 대표자가 공동위원장으로 맡으며 △위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위원 3분의 2 이상으로 의결한다 등의 내용이 적시돼 있으며, 심의·의결 대상으론 △경영상 이유로 인한 배치전환, 휴직·희망퇴직·해고의 기준 및 방안 마련 △분사·분할·합병·매각 등과 구조조정 시 이를 회피하기 위한 기준 및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초안은 “공사는 협약 체결 당시 근로자의 노동조건을 유지·개선하기 위해 적정 인력을 보장하며, 향후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며 고용안정협약 초안 내용을 상세히 적었다.

이러한 언론보도 이후 자유언론국민연합이라는 단체는 국가권익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해 “민주노총 출신 KBS 경영진이 민주노총 소속인 노조와 부당하게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기망하는 배임 및 부패행위”라고 주장했다(연합뉴스 2023년 8월9일). 한편 고용안정협약 체결이 경영권을 침해해서 위법·무효라고 비난하고, 구체적으로 KBS 이사회의 예산편성 및 결산에 관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KBS본부는 이러한 주장들이 타당한 것인지 우리 사무소에 질의했다.

3. “고용안정협약 체결이 경영권 침해로 위법, 무효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너무도 당연한 답변이었다. 노동조합이 요구한 고용안정협약은 KBS 분할, 합병, 매각 등 그야말로 회사 경영권 본질에 해당하는 사항에 관해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대표와 합의 내지 노사위원들의 의결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KBS에서 대대적인 배치전환 등 인사이동, 인력 감축 등 인적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동자(조합원)들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 노사 간에 고용안정위원회를 설치해서 고용안정 방안 마련 및 시행에 관해 심의, 의결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것이 이사회의 예산편성 등에 관한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서 경영권 침해로 위법·무효라면, 그야말로 이 나라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자 조합원을 위한 임금 등 단체협약도 회사 이사회 등 사측 경영권 침해한 위법·무효로 도대체가 말도 되지 않는 주장이다. 노동조합의 요구에 따라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해주는 것이 회사 경영진의 배임 내지 부패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서 임금 등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대표이사 사장 등 사용자를 위해 행동하는 자들은 모두 배임 내지 부패행위를 한 것이라는 것인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주장이다.

4. 고용안정협약 체결은 특별하지 않다. 이 나라에서 고용불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자주적인 노조 활동을 해온 사업장이라면 대부분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 명칭은 고용안정합의서, 고용안정협의서, 고용안정협약 등 제각각이다. 하지만 해당 사업장에서 노동자(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노사 간 방안을 마련하거나, 이를 위한 노사협의기구를 설치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에 관해서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에서 노동자(조합원)의 고용불안이 예상되는데도, 노동조합이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노동조합이 노동자(조합원)를 위해서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활동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KBS에서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존재했다. 당연히 노동자(조합원)를 위해 고용안정협약을 체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KBS에서 고용안정협약 체결이 논란이 된다는 것은 고용안정협약이 체결돼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한다. KBS에서 노동자(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노동조합이 제대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늘 KBS에서 제3노조 등 아무개노조가 언론노조 KBS본부의 고용안정협약 체결 요구에 시비한다면, 먼저 KBS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사측에 무엇을 요구해서 투쟁할 것인지를 스스로 밝혀야 마땅하다. 이 세상에서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를 아무리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노동자(조합원)의 고용 및 권리 향상을 위해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단결권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대한민국 헌법 33조와 노동조합의 조직, 활동에 관한 법률인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1조 목적과 2조 노동조합 정의 등 제규정에서 분명히 선언한 것이다. 수신료 분리징수가 실시되고, 대규모 경영진 교체가 예상되는 오늘, KBS 노동자들의 고용불안 우려는 어찌보면 너무도 당연하다. 노동조합이라면 마땅히 노동자의 고용 안정을 위해서 활동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오히려 노동조합이 고용안정협약 체결을 위해서 활동하는 걸 비난하고 방해한다면 우리는 이 나라법은 그 노동조합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 것일까.

5. 사실 나도 유감이다. 위와 같이 KBS에서 고용안정협약 체결 소동에 유감을 자세히 밝혔지만, 그래도 나는 유감이다. KBS에서 오늘까지도 고용안정협약 체결하지 못한 것에 나는 유감이다. 고용안정협약은 노동자(조합원)가 고용불안에 처했 때 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조합원) 고용이 불안하지 않은 평시에 장차 고용불안에 대비해 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용자가 노동자(조합원)에 대한 인적 구조조정의 시행에 임박해 이를 저지하고자 요구해 봐야 진정으로 고용안정을 보장할 협약을 체결하긴 어렵다. 만약 KBS에서 현재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고용안정협약이 체결돼 있었다면, 수신료 분리징수 실시와 대대적인 경영진 교체가 예상되고, 이에 따른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 실시가 우려된다고 해서 새삼 협약 체결을 하고자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은 KBS노조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어찌 보면 이 나라에서 노조들 모두에 해당한다. 한번 살펴보라. 우리 노동현장에서 고용안정협약 체결에 관한 요구는 회사의 분할, 합병, 매각 등 기업변동 내지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요구해서 체결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그 내용도 노사가 협의 정도에 불과해서 노동자(조합원) 고용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조합원)의 고용안정을 위해서 체결된 고용안정협약 대부분은 노동자(조합원)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수준의 것이 되지 못한다. 물론 이조차도 없는 사업장의 경우보다는 이러한 고용안정협약이라도 체결한 사업장의 경우가 노동자의 고용안정에 더 낫다고 말해야겠지만, 오늘 이 나라에서 고용안정협약에 여전히 나는 유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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