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 (민변 노동위원장)

1.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와 3조 개정안이 지난 6월30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이후 현재까지 국회는 본회의 상정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상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 자체를 반대하면서 입법 논의를 막는 국민의힘은 입법자로서의 직무를 유기하는 꼴이다.

2.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사용자’ 정의의 실질화, ‘노동쟁의’ 정의의 재정립, 쟁의행위 등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의 개별화를 핵심 내용으로 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근로자’ 정의 개정이 반영되지 못했고, 손해배상책임의 완화 규정들이 대부분 폐기돼 현재 본회의에 부의된 개정안은 말 그대로 최소한의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 재계는 노조법 개정을 적극 반대한다.

첫째, 이들은 이번 개정안이 죄형법정주의와 민법상 부진정연대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등 법체계상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조차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 이번 노조법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고 하면서 법 개정은 입법 정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법체계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정부·여당과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국가 경제가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노동법이 개정될 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등장하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이들은 주5일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에도 국가 경제가 파탄 난다고 주장하면서 극렬 반대했다. 그러나 노동법 개정 이후 국가 경제가 파탄 난 적이 있었던가. 이 같은 주장은 과도한 선동일 뿐이다.

셋째, 정부·여당은 노조법 개정안이 제대로 된 논의와 토론 없이 일방적으로 성안됐다고 주장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노조법 개정안은 길게는 지난 20년, 짧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약 1년 동안 국회와 전 사회적으로 치열한 논의와 토론을 거쳤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노동·시민·사회단체나 야당에서 제시한 노조법 개정안 내용은 상당 부분 축소됐다. 이런 마당에 논의가 부족하다거나 토론이 더 필요하다는 등의 정부·여당의 주장은 그저 시간 끌기에 다름 아니다. 이미 쟁점은 선명하고 판단과 결정만이 남았다.

3. 최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사건 등에서 쟁의행위로 인한 개별 조합원의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고, 무분별한 고정비 손해배상청구에 제동을 걸었으며, 쟁의행위와 손해 발생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엄격히 판단하는 등 쟁의행위 등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제한하는 일련의 판결을 선고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고용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이 노조법 제3조 개정안과 같은 맥락이 아니라며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규범력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고 만약 현재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제3조 개정안을 최근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부합하게 변경한다면 정부·여당이 과연 이번 노조법 개정안에 동의할 것인지 묻고 싶다. 그래도 반대할 것이다. 이들이 관심을 가지는 내용은 노조법 제2조의 ‘사용자’ 정의 개정이기 때문이다.

노조법 개정안처럼 ‘사용자’ 정의가 재정립할 경우 하청·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 등에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부담하게 될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명제다. 만약 이런 책임을 부담하기 싫다면 하청·비정규 노동자 노동조건 등에 원청이 관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권한을 행사해 이득을 취하면서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는 매우 이기적이고 불공정하다. 그래서 작금의 정부·여당 행태는 이와 같은 이기적이고 불공정한 사용자의 편을 들겠다는 선언이다.

나아가 현대자동차, 현대제철, CJ대한통운, 아사히글라스, 한국지엠, 포스코 등 원청 사용자 책임이 문제 되는 사용자들은 상당 부분 재벌·대기업이다. 하청 노조가 하청업체 사업주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면 이들은 권한이 없으니 원청과 교섭하라고 한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사용자’ 정의가 개정될 경우 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등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원청이 그에 맞는 단체교섭 책임 등을 부담하게 된다. 하청업체 사업주들이 노조법상 ‘사용자’ 정의 개정에 극렬 반대할 이유는 없다.

경제단체들은 한목소리로 노조법 2·3조 개정에 극렬 반대하지만, 단체들의 목소리와 달리 모든 사용자가 반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사용자’ 정의 개정은 자신들의 이해와 직결되는 재벌·대기업만의 주요 관심사일 수 있다. 실제 고용형태공시에서 확인되는 간접고용의 규모는 재벌·대기업에 집중돼 있다. 결국 정부·여당의 노조법 개정 반대는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하청·비정규 노동자를 희생양 삼아 재벌·대기업의 이윤 추구에 복무하겠다는 매우 불공정한 행태에 다름 아니다.

4.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이번 8월 노조법 국회 통과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열악한 하청·비정규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등에 기여할 노조법 개정에 정부·여당은 소수 재벌·대기업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무모한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야당은 노조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움직임에 총력을 다해 대응해야 한다. 국회 입법권이 반복적으로 침해되는 현 상황에서 야당이 무기력하게 대응한다면 국민에게 실망만을 안길 것이다. 국회와 정부를 바라보는 시민사회의 눈초리가 그 어느 때보다 매섭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