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지부 3지대장의 산화 이후 삭제된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하려는 이들이 모였다. 인권, 노동안전, 미디어, 구술기록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노동자 인터뷰를 보내왔다. 여덟 차례 걸쳐 싣는다. <편집자>

 

“한 개 회사가 아니라 다수 회사들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룰(규칙)을 만들어야 돼요. 한 현장에서 단체협약을 체결해 노동조건을 상향시키더라도 그 현장 공사가 끝나는 순간 현장 단체협약은 무력화됩니다. 오히려 그 현장에서 일한 조합원들은 회사가 취직을 거부할 수 있죠. 어느 현장에 취업을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권리들을 노동조합이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있는 거죠.”

건설노동자들은 한 공사현장에서 자신의 공정이 끝나면 끝이다. 일자리를 찾아 계속 옮겨 다녀야 한다. 고용이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건설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은 중요하다. 법으로 보장되는 기본적인 노동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장에서 노조가 교섭과 단협을 통해 빼앗긴 권리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건설노조는 하청 건설사들과 공동교섭을 하고 단협을 맺는다. 하청 건설사가 개설한 여러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동일한 처우를 받도록 만든다. 예컨대 전국의 형틀목수 임금을 토목건축분과 산별중앙교섭에서 정하는 식이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경인건설지부 지부장인 김태완씨는 중앙교섭을 통해 어느 현장에서나 하루 8시간 노동, 휴게시간 보장 등 ‘보편적인 룰’이 작동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현장에서 끝나지 않도록

건설현장의 골조 공정은 형틀목수뿐만 아니라 철근, 시스템동바리·비계, 해체·정리 같은 다양한 건설 직종 노동자들과 크레인, 펌프카 등 건설기계 직종 노동자들이 연계돼 작업한다. 김씨가 있는 경인건설지부는 인천에서 직종을 넘어 건설기계지부와 타워크레인지부와 골조 공정의 공동교섭을 하고 있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임단협을 체결할 권리가 상대적으로 보장이 안 돼 있는데 그 사람들도 일자리 관련된 문제는 똑같은 처지에 있거든요.”

경인건설지부는 2014년부터 공동교섭을 시도했다. 교섭장으로 건설사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 직종의 노동자들이 건설 현장에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투쟁을 했다. 건물을 빨리 지어야 하는 건설사의 입장에서 압박을 느껴야 교섭에 응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20년부터 공동교섭을 이끌어냈다. 그 해 건설지부와 타워크레인지부가 함께 싸워 교섭을 통해 타워크레인 임대사로부터 타워크레인 노동자의 지속적인 고용을 가능하게 했다.

김씨는 공동교섭에 대해 “건설노동자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단계를 구축해 보려고 했던 시도”였다고 말했다. 한 현장에서 직종별로 분리돼 제각각 대응했더라면 전반적인 문제를 풀어가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조는 다양한 직종 노동자들이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으로 공동교섭을 했다. 노조가 노동자들의 권리와 안정성을 넓히니, 노조로 노동자들이 모였다. 함께 모일 때 현장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이 본격화된 지난해 12월부터 공동교섭은 멈췄다.

‘건폭’ 몰이는 고용 위협하며 진행 중

구속 당시 김 지부장의 모습.
구속 당시 김 지부장의 모습.

김씨는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21년에 ‘건설현장불법행위근절 TF’를 통해 유일하게 구속된 건설노조 간부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기는 건설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논리를 정비하던 때로 봤다. 문재인 정부 말기 ‘건설현장 불법행위’ 논리가 정리됐다. 고용교섭도, 조합원을 차별해 고용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집회도 불법이 됐다.

전 정권이 남긴 잔재 속에서 현 윤석열 정권은 보다 강도 높은 탄압에 나섰다. 노조 자체가 불법이 됐다. 1천400명 가까운 노조 간부와 조합원들이 경찰 소환조사를 받았고, 30여명이 구속됐다.

“건설사도 이제 확신을 갖게 된 거죠. 이 정권이 노조 간부를 다 잡아가고 구속할 정도의 의지가 분명하다고 판단한 거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교섭 과정에서 노동조합원들 고용 자체를 거부하거나 아예 면담을 하지 않죠. 그런 회사들이 많이 생겼어요.”

건설노조 탄압 이후 건설노동자의 생활과 처우도 달라졌다. 단체협약이 보장했던 권리는 무용지물이 됐다. 회사는 노조 조합원이면 고용하지 않았고, 임금은 삭감되고, 체불이 발생하고, 4대보험이 미납됐다.

지부장인 김씨의 고민 역시 달라졌다. 건설현장 노사관계가 어느 정도 정착했다고 봤는데 룰이 완전히 무너졌다. 노조탄압이 있기 전까지는 더 많은 노동자들을 노조로 조직하는 것이 과제였다면 지금은 노조의 생존 자체가 고민이다.

“건설노조 없이 조합원의 고용과 노동조건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겠어요.”

진짜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건설노조 활동의 모습.
건설노조 활동의 모습.

2015년 경인건설지부 체육대회 기억은 김씨에게 노조활동을 이어갈 힘이다. 처음엔 50명도 안 되던 체육대회 참여인원이 수백명으로 늘었던 것. 그는 늘어나는 조합원수를 보면서 지역 공동교섭을 상상했다.

“중앙교섭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천지역 공동교섭은 어떻게든 가능하지 않을까 했었죠.”

김씨는 노조로 노동자들이 모이고 이를 구심으로 노조의 힘이 커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노조의 힘은 고용불안과 부당한 노동조건으로부터 진짜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한 준비다. 건설노동자를 고용해 건물을 지어 돈을 번 원청 건설사에 건설현장에 대한 진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건설현장의 구조 자체를 쥐고 결정하는 것은 원청 건설사입니다. 궁극적으로 건설노조는 모든 건설 공정들을 중앙 관리하는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교섭할 수 있어야 해요. 노조의 힘이 커지면 8시간 노동부터 여러 가지 보편적인 룰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봐요.”

김씨가 말한 보편적인 룰이 건설현장에서 만들어지던 과정이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으로 끊겨 버렸다. 일자리 잃어버릴 걱정 없는 현장으로, 사람답게 일하는 현장으로, 건설노조 역사가 지어온 그 과정을 다시 세워야 한다. “건설노조가 왜 이러고 있었는지를” 지금 제대로 드러내야 한다.

 

QR코드를 확인하면 더 많은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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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나(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사진 = 건설노동자 목소리 인터뷰 기획팀
영상 = 효진(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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