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10일 스포츠부를 해체했다. 40명 안팎의 스포츠부 기자를 다른 부서로 전환배치하고 스포츠면은 지난해 인수한 자회사 ‘디애슬레틱’ 기사로 채운다. 디애슬레틱엔 400명 넘는 스포츠 기자가 하루 150개 이상의 기사를 생산한다.(한겨레 7월26일 26면 ‘NYT의 스포츠부 폐지와 저널리즘’)

찬반 양론이 뜨겁지만 스포츠부 폐지는 실행됐고 독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찬성쪽은 대충 이런 논리다. 인터넷으로 실시간 경기 정보가 유통되고 몇 시간이면 유튜버가 해설까지 곁들인 영상을 제시한다. 전문기자 40명으론 강호에 넘쳐나는 고수보다 좋은 기사를 쓸 수 없다. 맞다.

반대 쪽은 부서를 해체하고 전문기자를 여러 부서로 쪼개 버리면 풋볼 선수들의 뇌진탕이나 메이저리거 약물 남용 같은 심층취재는 누가 맡느냐는 거다. 솔직히 돈 때문에 그랬다고 고백하는 게 더 솔직하다. 물론 ‘디지털 시대 경영 효율화’라는 포장 정도는 봐줄만하다.

하지만 이건 미국 얘기고 무대를 한국으로 옮기면 더 심각하다. 내가 본 1990년대 편집국의 스포츠부는 구제불능이었다. 체육부 선배들은 밤낮 술에 절어 살았다. 당시엔 전국 체육대회(체전) 취재가 굵직한 행사였다. 해외여행은 고사하고 국내여행조차 쉽지 않을 때 체육부 기자들은 취재를 핑계로 10여일씩 출장갔다. 체전은 7일간 열리지만 사나흘 먼저 가서 예선 경기부터 취재했다.

10여일 동안 매일 경기 종목별 협회장이 전국에서 몰려온 체육부 기자들에게 술추렴을 해줬다. 국제대회에서 메달 좀 따는 경기 종목의 협회장은 죄다 재벌그룹 오너다. 지불 능력이 충분한 만큼 술자리도 업그레이드 됐다. 어제는 양궁협회장, 오늘은 권투협회장, 내일은 축구협회장이 주최하는 술자리가 이어졌다.

체육기자가 이러는 사이에 스포츠 기사는 형편없이 추락했다. 나는 1991년과 2021년 1월 1~15일자 조선일보와 한겨레 모든 기사를 분석한 적이 있다. 스트레이트 기사 3천490개와 피처 기사 2천531개를 합쳐 모두 6천21개 기사였다. 이들 기사에 나오는 취재원을 분석했다.

두 신문의 1991년 1월 보름동안 203개 체육기사에 등장하는 취재원은 111명이었다. 2021년 1월엔 93개 체육기사가 실렸는데 취재원은 120명이었다. 겉으로 보면 30년 동안 두 신문 체육기사를 심층 기사를 늘렸고 취재원도 다양해졌다. 그러나 경기종목을 보면 한없이 추락했다. 1991년엔 20개 경기 종목이 등장하는데, 2021년엔 14개로 대폭 줄었다.

두 시점 모두 1월달 기사를 살폈다. 체육 기자들은 1991년 1월엔 핸드볼, 탁구, 씨름, 유도, 체조, 빙속, 아이스하키, 사격 기사를 썼다. 주로 체육관 안에서 겨울 스포츠다.

그러나 2021년엔 이런 종목은 지면에서 사라졌다. 2021년 1월엔 비시즌인데도 축구(36개)와 야구(33개) 기사가 압도한다. 두 경기를 다룬 체육기사가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특정 엘리트 스포츠 편중이 더 심해졌다. 체육기자들은 시즌도 시작하지 않아 동계훈련 중인 축구와 야구 기사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지 답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1991년엔 시민이 참여하는 생활체육 기사나 협회 비리 등 체육계 심층 취재 기사가 37개나 됐다. 2021년엔 3개로 크게 줄었다. 이런 현상은 조선일보와 한겨레 모두 동일하다.

이처럼 체육 기사에서 저널리즘의 가치는 30년 동안 크게 추락했다. 과거엔 기자가 정보를 독점했으니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단순히 경기 결과를 전달하는 기사는 이젠 과감하게 AI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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