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호운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최근 대중교통을 이용한 출근길에서 거의 매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어느 순간만 되면 열차 안에 가득 찬 많은 이들의 핸드폰에서 일제히 알람이 울려댄다. 그렇게 나도 핸드폰을 꺼내 보면 오늘도 어김없이 폭염경보 재난 문자가 화면에 뜬다. 재난 문자는 가장 더운 낮 시간대 야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고 있지만, 지키기는 쉽지 않다. 올여름은 지난해보다 더 더운 듯하다. 매일같이 울리는 재난 문자를 받다 보니 이제는 재난 문자가 오는 게 하나의 일상이 돼버렸다. 폭염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재난 문자에 익숙해지는 것인지 어쨌든 익숙해지고 있다. 그렇게 폭염을 대비하는 사회를 보자면 오히려 기후위기에 대한 안전불감증 같아 씁쓸한 생각마저 든다.

폭염은 기온이 높은 하나의 자연 현상이다. 누구든 간에 더운 날씨에 바깥에 오래 있으면 더위를 느끼고 심하면 온열질환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폭염을 피해 생활을 유지하는 데는 불평등한 모습이 드러나곤 한다. 누군가는 시원한 에어컨 안에서 폭염을 피하는 반면, 누군가는 인상되는 공공요금 속에서 부채 하나에 무더위를 견뎌내야 한다. 지역에 설치한 ‘무더위 쉼터’는 곳곳에서 제기능을 잃고, 우리 사회 재난 취약계층은 보호받지 못하면서 사회양극화는 견고해지는 듯하다. 폭염은 하나의 자연 현상이지만,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건강마저 양극화되면서 삶의 질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폭염은 불평등하고, 노동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누군가는 폭염을 피하면서 일할 수 있는 조건에 있지만,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 지난 6월에도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노동자가 쓰러졌다가 결국에는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는 하루에 20킬로미터 가까이 걸었고 휴게실까지 가려면 걸어서 10분(왕복)이 걸렸다. 폭염에서 자기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물과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공간마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취약 노동자가 폭염 속에서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 일하는 노동이 오히려 자기 삶을 위협하는 모순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고, 멈출 수 없는 구조에서 폭염 대비가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진다.

비단 이러한 상황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다. 폭염에 가장 취약한 노동자는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물론 옥외는 아니지만, 물류센터나 재활용 선별장 등과 같이 창고형 건물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폭염에 매우 취약하다. 사실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을 예방하는 방법은 고용노동부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늘(바람), 물, 휴식 등 3대 기본 수칙을 통해 온열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 이 수칙만 일터에서 제대로 지켜지더라도 온열질환으로 인한 재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칙은 ‘권고’에 불과하다. 그저 교육·홍보자료에 불과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하나의 포스터로 여겨지기도 한다.

기후위기 속 여름은 폭우와 폭염의 반복이다. 반대로 겨울은 점점 추워지고 있다. 올해 여름은 폭우로 인한 재해도, 폭염으로 인한 재해도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다가오고 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야외에서 일을 멈출 수 없는 노동자가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으로 정의로운 전환이나 노동시장 전반에 대한 구조적 논의도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겪으면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존을 위해 빠르게 대응해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다. 노동부가 말하는 폭염예방 3대 수칙이 모든 일터에서 반드시 지키도록 한다면 온열질환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와 노동은 생존의 문제이자 동시에 생계의 문제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kihghd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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