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명교 플랫폼C 활동가

*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볼만한 작품은 단연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이 영화는 엄청난 규모의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이후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아파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온갖 인물군상과 사건들이 한국 사회를 축소한 듯 하다.

삶의 공간은 정치적이고, 어떤 결정은 그 공동체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낸다. 재난 이후 황궁아파트에도 중요한 의사결정의 순간이 찾아온다. 아파트 안에 함께 엉켜 살던 외부인들을 내쫓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몸을 던져 생명을 구한 영탁(이병헌 분)은 주민들의 신임을 얻어 얼떨결에 아파트의 주민대표가 되고, 외부인들을 추방함으로써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려 시도한다. 딱히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는 아니지만, 주민들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떠밀리듯 판단한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이런 결정이 이뤄지는 토론과 투표 과정을 블랙코미디로 보여 주는데,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절차가 얼마나 위선적으로 덧칠될 수 있는지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세계관이 마주한 위기는 일개 아파트가 아닌 세계의 파국이다. 종말 이후 찾아온 혹한 속 수렵 노동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를 벗어난 모든 활동은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내부 위기는 심화된다. 위기를 넘어설 방책을 궁리하지 못하면 모두의 생존이 위협받을 게 분명해진다. 마치 신자유주의가 파괴한 질서 이후 정치 그 자체의 위기를 맞닥뜨린 한국 사회처럼 말이다.

내부의 위기를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한 주민대표 영탁에게 좋은 핑곗거리가 생긴다. 외부인들을 구출해준 내부의 배신자들을 색출해낸 것이다. 영탁은 주민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어젯밤, 우리 아파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주민 한 분이 집에 바퀴벌레 무리를 숨겨주고 있었죠. (…) 우리의 아버지들과 아들들이 목숨 걸고 구해온 것들이 외부인 손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위기 극복의 어떤 순간에 아파트 바깥의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도치되고, 살인마저 서슴지 않는 민방위의 폭력은 외부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내부인을 지키는 정당한 폭력이 된다. 우리는 여기에 어떠한 국가폭력을 대입해도 그럴듯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살인적인 강제추방 단속작전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향한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고, 정주민들보다 범죄율이 낮은 조선족 이주민들을 향한 온갖 인종주의적 욕설과 비난 역시 어렵지 않게 정당화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 민방위의 폭력은 재난적 상황에 이르러서야 정당화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종종 그 임계를 넘어왔다.

이번 광복절 대통령 연설을 보며 <콘크리토 유토피아>의 지옥도가 떠올랐다. 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습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 추종 세력들에게 속거나 굴복해서는 안 됩니다.”

취임과 함께 레임덕을 맞은 듯한 윤석열은 자신의 무능력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이 자초한 위기를 내부의 반대자들을 ‘반국가 카르텔’ ‘공산전체주의자’ 등으로 호명하며 지연시키고자 시도해 왔다. 그런 점에서 전체주의자는 윤석열 자신일 것이다. 자본의 과잉생산이 낳은 위기가 정치·사회적 위기를 낳았을 때, 집정자들은 언제나 억압받는 사람들을 내부-외부로 나눔으로써 타파하고자 했다. 위기의 시대에 자본가들은 더 많은 부를 거머쥐지만, 윤석열과 같은 대리인들은 이 모순을 노동자계급 중 더 취약하고 경계에 있는 집단을 표적 삼아 극복하려 한다.

물론 윤석열은 영탁처럼 탁월한 연설가도 아니고, 헌신적이지도 않다. 그는 파시스트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다만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사회적인 것’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역량’을 능히 파괴할 만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동시간대 상영하는 다른 흥행작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동시대성을 갖추고 있다. 이 영화는 위기의 시대에 노동자계급의 인종주의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런 분열과 모순에 빠지지 않고 단결하고 세상을 바꾸려면 어떤 규범이 필요한지 고민하게 한다. 충무로식 포스트-아포칼립스물의 관성이라 할 수 있는 신파에 빠지지 않고, 뚝심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플랫폼C 활동가 (myungkyo.h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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