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이 공인노무사 (금속노조 법률원 울산사무소)

지난 5월, 노동위원회 구제신청 사건을 하나 맡았다. 초기 상담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징계 수위가 ‘견책’이라고 했다. “아, 견책이요?” 난감했다. 견책은 가장 가벼운 징계다. 그러니 징계양정이 과하다는 주장은 할 수가 없다. 징계 사유 자체가 없다고 봐야, 비로소 ‘부당견책’이 된다. 그런데 이 사건의 상대방은 지방자치단체(대구 수성구)다. 구청장이 징계를 요청해서, 외부 변호사들도 여럿 들어온 인사위원회에서 징계를 결정했는데, 설마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징계를 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당사자와 노동조합을 만났다. 2020년부터 시작되는 긴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게 뭐지 싶었다. ‘진짜 이런 이유로 징계를 했다고?’

당사자는 2020년 1월에 고산 건강생활지원센터에 무기계약직 간호사로 입사를 했다. 입사하자마자 코로나가 발생했고, 이른바 ‘신천지 집단감염 사건’이 터지면서 몇 달 동안 생고생을 했다. 그나마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반강제 휴일 근무도 없애고, 출장수당도 받기로 했다. 그런데 센터장이 유독 노동조합 활동을 못마땅해했다. 직원회의에서 출장수당을 꼭 받아야겠냐고 어깃장을 놓았고, 당사자를 따로 불러 “주말근무 안 하는 간호사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호통을 쳤다. 견디다 못해 부당노동행위로 신고를 해서 주의 처분이 내려지기도 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노동조합 탈퇴자가 늘면서 그는 점점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는 2020년 12월에 수성구 보건소로 파견 갔다가 2022년 2월에 센터로 복귀했다. 주요 업무가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인데, 건강위험요인이 있는 사람들에게 모바일 앱을 활용해서 맞춤형 건강관리를 해주는 것이다. 의사-코디네이터-간호사-영양전문가-운동전문가가 한 팀이 돼 일하는데, 파견근무를 가기 전까지는 사이좋게 잘 지냈지만, 센터로 복귀했을 무렵에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했다.

2022년 5월, 헬스케어 사업이 시작됐다. 직장인들을 위해 주말 검진도 하는데, 팀원들의 일정을 미리 조율해서 날짜를 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2022년 5월에는 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28일 토요일 근무를 잡고 예약까지 받았다. 개인일정이 있다고 하니 담당자가 검진을 취소했다. 6월에도 비슷했다. 그가 11일과 25일은 가능하고 18일은 어렵다고 했는데, 이날을 포함해서 주말 근무를 잡았다. 그리고는 18일에 근무할 간호사를 직접 구하라고 했다. 당사자가 항의하자 그러면 11일만 근무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끝난 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나중에 ‘주말 근무 거부’로 징계사유가 됐다.

근로기준법이니, 대법원 판례니, 근로계약서니 다 떠나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주말 근무는 정기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의 일정을 조율해서 한 달에 한 번도 하고, 두 번도 하고, 세 번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날짜를 정하고는 이날 출근 못 한다고 했다고 주말 근무 거부라면서 징계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징계인가? 그러면 징계를 안 받으려면, 주말 일정을 모두 비워놓고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공무직이 무슨 현대판 공노비인가?

부당한 징계라고 확신했지만 심문회의를 가면서 불안했다. 무엇보다 ‘견책’이어서. 혹시라도 공익위원들이 “에이, 견책인데 뭐. 임금 손해도 없고, 공무원도 아니어서 승진도 관련이 없잖아.”라면서 말도 안 되는 징계 사유를 적당히 눈감아 줄까 봐. 다행히, 공익위원들의 상식도 내 상식과 같았다. 특히 한 공익위원의 발언은 남달랐다. “견책은 가장 가벼운 징계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신청인의 불이익이 있는 것 아닙니까? 인사위원회에 불려가고, 조사받고, 대답하고, 그 자체가 너무 큰 고통이 아닙니까?” 신경안정제를 먹으면서 겨우 버티던 신청인도, 이 대목에서는 무너져서 눈물을 쏟았다. 나 역시 울컥했다.

견책. “잘못을 꾸짖다”는 뜻이다. 수성구청의 견책은 너무나 가벼웠지만, 이에 대한 노동위원회의 꾸짖음은 엄중했다. 수성구청이 그 의미를 이해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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