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우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연일 우리는 다양한 사고와 참사를 목도하고 있다. 사실 우리 사회의 각종 시스템은 완전무결하지 않기 때문에 사고는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이후 윤석열 정권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고 있다. 소를 잃어 버리면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하는데, 이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게 지금의 윤석열 정권이다. 헌법 34조에 따라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함에도, 윤석열 정권은 막중한 안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국가의 안전 책임을 도외시하는 것에서 한 발 나아가, 윤석열 정권은 철도안전을 저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해외 컨설팅업체에게 철도안전에 관한 연구용역을 맡겨 진행 중인데, 실제 내용은 철도공사로부터 시설유지보수 업무와 관제권을 분리시키는 내용이라고 한다. 국토부는 여전히 철도 상하분리 완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재확인된 셈이다.

그렇다면 국토부가 추구하는 철도 상하분리 완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영국 철도의 민영화된 상하분리 구조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수많은 민간기업들이 철도 운영과 유지보수 시장에 진입하고, 돈벌이를 위해 경쟁하는 철도시스템을 말한다.

영국 국철이라는 일원화된 조직 구조가 붕괴한 뒤, 영국 철도시스템 내에는 120여개의 회사들이 난립했다. 이들은 서로 무수히 많은 사업계약을 맺고 철도업무를 수행했다. 단적으로 시설 유지보수를 맡았던 민간기업 레일트랙(Railtrack)이 화물열차 회사들과 맺은 법적 계약만 하더라도 224개였다. 꼬인 실타래처럼 뒤얽히고 혼잡한 계약관계 속에서 법적 의무를 따지다가, 정작 안전관리 주체는 모호해지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비용 절감과 이윤 추구에 몰두했다.

이러한 난맥상과 복마전 속에 운영되던 영국 철도는 1990년대 후반 단기간에 수십 명이 사망하는 등 철도 안전이 파탄 났다. 대표 사례인 해트필드 사고 당시 4명이 사망하고 70여명이 부상당했는데, 사고 구간 35미터 이상의 선로가 300여개의 조각으로 쪼개졌다. 해트필드 사고 이후 정부가 다른 철도 구간을 조사한 결과, 1천286곳의 선로에 균열이 나 있었다. 레일트랙은 업무를 지역별로 외주화했고, 외주업체들은 비용을 핑계로 선로 관리를 소홀히 한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 철도 민영화 이후의 중대사고들은 관리 주체의 무수한 분절화로 인해 조직 경계를 넘어 협업하지 않았던 시스템 문제 때문이었다. 이처럼 ‘복잡성’이 증가한 철도시스템은 내적 기능 장애가 심화했고 안전은 더욱 취약해졌다. 철도시스템 내에 민간기업들이 난립하고 관리체계가 복잡해질수록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는다는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영국이다. 저명한 안전 이론가 찰스 페로우에 따르면, 시스템의 복잡성 증가는 사고 발생 가능성을 크게 높인다.

이미 국내 철도에도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미명하에 컨소시엄과 같은 형식을 통해 민간자본이 진출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철도공사로부터 시설유지보수 업무와 관제권마저 분리시켜 일원화된 안전 관리구조가 붕괴하고 시스템 복잡성이 가중된다면, 그토록 불안전했던 20년 전의 영국 철도처럼 될 것이 자명하다. 영국의 패착을 우리가 수입해서 반복할 이유가 전혀 없다.

분리와 경쟁, 그리고 자본의 이윤 추구 대상인 철도가 아니라 노동자와 이용자가 참여하는 민주적 지배구조 위에서 통합과 공공성을 지향하는 철도시스템을 구축해야만 안전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나아가 책임 사슬의 상층에 있는 집단(정부·국회·경영진 등)을 부단히 감시하며, 이들에게 안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즉 안전은 민주주의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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