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1982년 8월 처음 덕유산에 갔다. 고1 친구 10여명이 텐트를 치고 10박11일을 무주구천동 계곡에서 보냈다. 스카우트 지도교사였던 수학 선생님 인솔하에 당시 거기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잼버리에 참가했다. 낮에는 더웠지만 그래도 덕유산자락에 자리 잡은 야영장은 해만 지면 시원했다. 계곡 물에 몸을 담그면 5분을 버티기 힘들 만큼 추웠다. 대만·일본 등에서 온 외국 학생들과 모닥불 피워 놓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이동식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고, 음식도 모두 자급자족했지만 41년 전 잼버리에 참가한 학생 1만1천명 중 누구도 온열질환에 걸리지 않았다. 정권 초기였던 전두환은 행사를 마친 모든 참가자에게 도금한 금메달을 하나씩 줬다. 메달 뒤엔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친필 사인을 새겼다. 잼버리 참가자에게 금메달을 주는 건 좀 생뚱맞았다.

덕유산을 두 번째 오른 건 2000년 늦여름 민주노총 전국 문화활동가 2박3일 수련회 때다. 한진중공업노조 문화부장을 오래 맡았던 박성호 형과 같이 갔다. 도착해 보니 어디서 구했는지, 바닥에 엄청난 양의 짚이 깔려 있었다. 당시 민주노총 신재걸 문화국장은 틈틈이 짚으로 새끼 꼬기를 해 밧줄을 만들라고 했다. 마지막 날에 그걸로 거대한 차전놀이를 한판했다.

전북 부안 새만금에서 열리는 세계잼버리가 뭇매를 맞는다. 얼마 전 폭우에 잠긴 습한 땅에, 나무 한 그루 없는 야영장을 보면서 어째 40년 전보다 준비를 부실하게 했는지 아쉬웠다.

첫날부터 온열 환자가 속출해 전북지역 시민사회는 플랜B를 만들라고 주문했는데도 대통령은 기어이 거기 가서 축사까지 했다. 그래 놓고 비판이 거세자 ‘원래 문재인 정부가 준비했던 것’이라고 또 남 탓이다.

이미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새만금 일대 ‘폭염과 폭우’를 경고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안일했다.(경향신문 8월5일 3면 “작년 국감서도 ‘폭염·폭우’ 경고 … 정부의 준비는 안일했다”) 같은날 동아일보는 이번 잼버리에 무려 4천500명으로 최대 인원이 참가한 영국 스카우트들이 철수를 결정하고 호텔로 이동한다고 보도했다.(동아일보 8월5일 1면 “4500명 최대 인원 참가 英 ‘잼버리 행사장서 철수’”) 동아일보는 이날 4면에 급하게 마련된 야영장 내 병원 시설에서 온열 환자가 응급조치를 받거나, 역시 급조한 냉방버스에서 지친 표정으로 잠을 청하는 참가자 사진을 실었다. 매일경제도 같은날 1면에 “난장판 된 잼버리, 정부 뒤늦게 ‘총력 대응’”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이 지경인데도 대통령실은 전 정부를 탓했다. 한겨레는 이날 8면에 “비판 쏟아지자… 조직위는 ‘뒷북 수습’, 대통령실은 ‘문 정부 탓’”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경향신문은 이날 3면에 “‘문재인 정부 때 잼버리 준비, 실무는 전북도’ … 윤 정부 또 남 탓”이라고 보도했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 대통령실에서 이런 메시지를 국민에게 던지는지 모르겠다. 그이는 윤석열 정부의 진정한 엑스맨이지 싶다.

동아일보와 매일경제조차 정부의 부실 대응을 비판하는데 조선일보는 환하게 웃으며 물놀이를 즐기는 참가자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조선일보는 1면 사진에 “잠시나마 더위 잊은 스카우트 ‘이게 잼버리’”라고 제목 달았다. 역시 ‘멘탈갑’이다.

또 조선일보는 이날 6면에도 “‘이제부터 정부가 챙긴다’ … 잼버리 달려간 총리·장관들”이란 제목 아래 한덕수 총리가 참가자들과 환하게 웃으며 기념촬영한 사진을 실었다. 윤석열 정권의 호위무사처럼 설치는 조선일보의 앞날이 걱정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