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대법원 2023. 6. 15. 선고 2021두39034 판결

1. 사실관계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정병민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원고 한국도로공사시설관리 주식회사는 2018년 6월26일 설립된 한국도로공사의 자회사다. 참가인은 기존 용역업체 소속으로 한국도로공사 본사 사옥의 시설물 관리업무에 종사하던 근로자다. 한국도로공사는 정부의 2017년 7월20일자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이하 ‘이 사건 정부지침’), 같은해 12월28일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개최했고,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위 절차에서 ㉠참가인과 같이 기존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정규직 전환대상자로 선정했으며, ㉡이들에 대한 전환심사는 공사채용 결격사유 등 최소 수준으로 검증하기로 했다. 원고 회사는 2018년 7월25일 참가인에게 그의 수행업무가 ‘단속적 근로’에 해당한다면서, ‘격일제 교대근무 합의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고 참가인이 이에 불응하자, 2018년 8월1일 참가인을 전환채용하지 않은 채로 한국도로공사의 시설관리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 이 사건의 경과

참가인은 원고 회사가 이 사건 정부지침에 따라 자신을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함에도 2018년 8월1일 원고 회사가 채용을 거부한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중노위는 2019년 3월25일 참가인에게 원고 회사에 대한 고용승계 기대권이 인정되고, 원고 회사는 노·사·전문가 협의에 따라 참가인을 전환채용해야 할 의무가 존재하는데, 참가인이 위 합의서를 작성·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가인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로 보기 어렵다며1) 원고 회사가 2018년 8월1일 참가인을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라는 내용의 재심판정을 내렸다.

원고 회사는 이 사건 재심판정에 불복해 2019년 5월9일 서울행정법원에 이 사건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2020년 6월18일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 회사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기간제 근로자의 보호 필요성이나,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의 취지 및 근로관계의 특성은 어느 사업장의 사용자만이 변경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새로운 사용자가 그러한 기대권의 바탕이 된 사정을 명시적으로 인정했거나, 새로운 사용자가 해당 사업장에서 사업을 영위하게 된 동기와 경위, 이전 사용자와 새로운 사용자 사이의 관계 등을 고려했을 때 새로운 사용자가 위와 같은 기대권의 바탕이 된 사정을 수긍했을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기대권이 이전 사용자와 새로운 사용자 사이의 관계에서 이전되는 사업의 내용으로 포함돼 해당 사업장의 근로자는 여전히 새로운 사용자에 대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정당한 기대권을 가진다”고 봤다(서울행정법원 2019구합64587).

원고 회사는 위 1심 판결에 불복해 2020년 7월6일 서울고법에 항소했는데, 서울고법은 2021년 4월23일 아래와 같은 이유로 원고 회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서울고법은 이 사건 정부지침이나 ‘노·사·전문가 협의회’'가 내린 결정으로 개별 근로자와 당시 설립되지 아니한 원고 회사 사이에 구체적인 권리가 발생하거나 의무가 부과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원고 회사는 “전환대상자가 공사채용 결격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만을 검증할 뿐 사실상 전환대상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채용하겠다는 취지로 봄이 상당”하고2), 참가인과 원고 회사와 사이에서 “그 설립 과정부터 정규직으로 전환채용되어 계속 근무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참가인에게 원고 회사에 대한 정규직 전환채용의 정당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봤다(서울고법 2020누47610). 원고 회사는 위 2심 판결에 불복해 2021년 5월12일 상고했는데, 3심 대법원은 2023년 6월15일 원고 회사의 상고를 기각했다(대상판결).

3.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정규직전환기대권과 고용승계기대권을 명시적으로 최초로 인정한 두 판례 법리를 원용하면서(대법원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판결,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6두57045 판결), 도급업체가 용역업체와의 위탁계약이 종료되고 도급업체가 자회사를 설립해 자회사에 해당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 “자회사가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해 새롭게 근로관계가 성립될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됐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자에게는 자회사의 정규직으로 전환채용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된다. 이때 근로자에게 정규직 전환채용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자회사의 설립 경위 및 목적, 정규직 전환채용에 관한 협의의 진행 경과 및 내용, 정규직 전환채용 요건이나 절차의 설정 여부 및 실태, 기존의 고용승계 관련 관행, 근로자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 자회사와 근로자의 인식 등 해당 근로관계 및 용역계약을 둘러싼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참가인에게 정규직 전환채용에 관한 기대권이 인정된다고 본 원심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4. 대상판결의 의의

대법원은 기간제법 시행 이후 근로계약 갱신기대권 법리를 통해 기간제 근로자들의 고용 종료를 보호했고, 이를 토대로 정규직전환기대권 법리를 만들어 냈으며, 나아가 고용승계기대권 법리로 발전시켰다. 고용승계기대권은 노동위원회가 ‘고용관계의 승계에 대한 기대권’이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했고 대법원이 그대로 받아들인 개념이라면, 이 사건의 경우 노동위원회가 고용승계기대권으로 판단했음에도, 대법원이 기대권에 대한 기존 법리를 토대로 정규직 전환 ‘채용’ 기대권이라는 독특한 법리를 창조해 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법원은 대상판결이 선고될 무렵 ‘정년 후 재고용 기대권’에 관한 판결도 선고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계약종료와 관련된 사안에서 기대권 법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으로 예상된다(대법원 2023. 6. 1. 선고 2018다275925 판결 참조).

대법원이 어떠한 이유로 이 사건을 고용승계기대권 사안과 달리 판단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기존 갱신(전환)기대권 법리는 단일한 사용자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는지 여부를, 고용승계기대권 법리는 새로운 용역업체와의 신뢰관계가 형성됐는지 여부를 고려했다. 대상판결은 모회사이자 기존 도급업체와의 신뢰 관계를 통해, 자회사이자 기존 용역업체인 원고 회사와의 신뢰관계를 이끌어 냈다는 측면3)에서 그 차이점이 있다. 한편 정규직 전환 ‘채용’ 기대권이라는 단어는 이 사건 2심 판결부터 사용된다. 아마도 원고 회사가 참가인과의 근로계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정규직 전환기대권 법리를 그대로 원용한 1심 판결을 비판하자, 이를 의식해 ‘채용’ 단계에서의 기대권 법리 형성을 고민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대법원은 이 사건 정부지침에 따른 정규직 전환 협의과정을 사용자와의 상당한 신뢰관계의 적극적 요소로 보았다. 이 사건 정부지침이 ‘유도적 기준’에 불과하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토대로, 이 사건 정부지침을 되레 기대권을 부정하는 논거로 활용했던 일부 하급심 판결의 해석을 뒤늦게나마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각주

1) “원고의 참가인에 대한 전환채용 거절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이 사건 재심판정 및 각 심급에서 거의 동일한 취지로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봤으므로 이글에서는 지면의 한계상 이 부분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2) 서울고등법원은 만일 이렇게 해석하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용역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목적으로 설립되는 자회사가 비정규직 용역근로자를 선별적으로 채용함으로써, 기존 용역근로자로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로서의 지위조차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3) 대상판결은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한국도로공사가 원고의 설립 및 근로자 채용, 근로조건 결정 과정을 주도했다. 따라서 한국도로공사가 부여한 신뢰는 실질적으로 그 자회사인 원고가 부여한 신뢰와 다름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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