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미 공인노무사(노무법인 비젼)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 ○○○인데 기억하시겠어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기억나고 말고. “당연하죠, 잘 지내셨어요? 웬 일로 제게 전화를 다 주셨을까?” 딸(편의상 A라 하자)이 해고됐는데, 궁금한 게 있어서 내가 생각났다고 했다. 잠깐의 안부를 묻고, 상담은 A와 직접 하는 것이 나으니 직접 전화 달라고 했다. 잠시 후 전화가 왔다. 사장 험담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는데, 회사에서 다시 출근하라고 하니 어찌해야 하냐는 내용이다. 사장 험담으로 해고. 엇, 이거 내가 상담했던 사건인데. “혹시 전철역에서 상담받지 않았어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내가 그때 상담했던 노무사예요. 와 이런 우연이 있나”

구로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한 달에 두 번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무료 노동상담을 한다. 6월 둘째 수요일, 그날은 유난히 상담자가 없었다. 덥고 시끄러운 전철역이라 상담하려는 사람이 많아도 힘들지만, 또 이렇게 바쁜 사람들의 움직임을 그냥 보기만 하는 것도 힘들다. 뭐라도 하려고 나왔는데 쓸모가 없는 느낌이랄까. 바로 그날 이 한 건의 상담만으로도 난 충분히 쓸모 있었다고 생각하며 보람차게 집으로 돌아간 기억이 났다.

3월 중하순께 A는 사무실에서 직장 동료 B와 메신저로 사장 험담을 주고 받았다. 그런데 그 컴퓨터 화면을 그대로 둔 채 자리를 비웠고, 하필 사장이 그걸 본 것이다. 다음날 사장은 A에게 “나 욕하는 사람이랑은 같이 일 못하겠으니 나가라”고 했다. 해고였다. 갑자기 직장을 잃은 A는 인터넷을 검색하고, 1350 고용노동부 상담도 해서 ‘해고예고수당’을 알게 됐고 고용노동지청에 해고예고수당 청구 진정을 접수해 출석조사도 받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해고예고수당에 대해 담당 근로감독관은 “서로 잘 합의해야 빨리 끝나지 법대로만 고집하다간 못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근로감독관의 말이 정말 맞는 것인지, 뭔가 아닌 것 같지만 딱히 어디에 물어야 할지 몰랐다. 답답한 마음을 친구와 수다로 풀고 전철을 타러 가는데 친구가 “이 역에서 가끔 노동법 수첩도 나눠 주고, 무료로 상담도 해 주던데, 오늘이 그날이면 좋겠다”라고 말했는데, 대박! 진짜 눈앞에 무료상담이 벌어지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날 내 쓸모는 간단하다. A에게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 해고된 지 3개월이 다 돼 가니 늦지 않게 빨리 신청서부터 접수하라고 안내해 준 것이다. 그런 게 있는 줄 정말 몰랐다던 A를 보며, ‘학교에서 노동법을 가르쳐야 해’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던 근로감독관에게 분개했다. 상담해 준 사건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질 때도 있는데, 그 후일담을 들을 기회는 없다. 그런데 이 경우는 아주 우연히 사건이 다시 내게 돌아와 상담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 사건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접수 20일 만에 화해로 모든 다툼이 종결됐다.

지하철역 무료노동상담의 역사는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가 취약계층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노동복지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자치구별로 확대하였다. 구로구에도 노동자종합지원센터(옛 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가 생겼고, 일하는 사람들 곁에서 꾸준히 상담, 교육, 법률지원 사업을 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요즘 노동자종합지원센터가 불안하다. 모든 것을 내 편과 다른 편으로만 가르는 사람들이 득세하면서부터다. 그들은 다른 편이 잘했던 일은 서둘러 지우고, 내 편이 못하는 이유는 다른 편이 잘못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큰소리친다. 일하는 사람 곁을 묵묵히 지켜 온 노동복지센터들이 단지 다른 편이라는 이유로 지워질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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