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서이초등학교 24세 교사는 학부모들의 극성민원에 시달리다 고통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전체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학교는 선생님의 죽음이 학교 책임이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자신이 희망하는 부서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을 다뤄야 하는 정부 책임자는 일선 교사들의 고통은 방관한 채 “학생인권 신장이 교사의 죽음을 불렀다”고 망언을 뱉어 내고 있다. 과거 야만의 학교에서 교사의 ‘권위'를 위장한 ‘폭력’을 배제하기 위해 학생으로서 인간의 권리를 규정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들이 이어져 왔고 덕분에 지금 교실의 모습은 달라졌다. 정당한 훈육이란 무엇인지 사회적 합의 없이 남발되는 ‘폭력’에 대한 고발은 일선 교사들의 소명을 갉아먹고 있다.

우리는 시민에게 주어지는 ‘교육받을 권리’를 위해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 교사의 ‘권위 또는 권한’을 어떻게 현장에서 형성할지 토론해야 한다.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의 위치는 어디고 그 자격으로서 어디까지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교사의 노동자로서의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민원인을 직접 마주하게 하는 시스템의 문제, 저연차 선생님들이 더욱 열악한 위치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학생인권과 교권’이라는 대립적 구도로 펼쳐지는 담론장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한편 경기도 용인의 한 초등학교 특수학급 교사는 자폐증을 가진 학생의 학부모인 주호민 작가에게 고소를 당해 직위해제되고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가 사회적 명망가이다 보니 온갖 언론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개인들의 순간적 판단과 행위가 적나라하게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장애 아동에 대한 온갖 혐오가 분출되고 있다. 선생님도, 학생도 그리고 학부모 마저도 견디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권리와 권한의 아노미 상태에서 ‘20년 동안 특수학생을 위해 헌신해 왔던 선생님의 소명’과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부모의 사랑’ 그 어느 것도, 폄하돼서는 안 되는 사회의 가치들이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권리와 권한에 대한 논쟁은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과 교육청이라는 교육 영역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프로젝트 문이라는 게임회사와 계약을 맺고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를 하던 한 작가는 선정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이유와 과거 게임업계의 사상검증에 저항하며 “나는 메갈이다”는 해시태그를 단 트윗을 올렸다는 이유로 계약이 해지됐다. 게임 유저들의 민원으로 시작한 이 사건은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게임업계의 사상검증과 이에 따른 노동권 침해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은 사상의 자유를 허락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의 해고를 엄격하게 규율한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곳에서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한과 권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꾸 ‘선'을 넘는다. 코스트코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노동자는 폭염에도 지속적으로 3시간 이상 휴식 없이 옥외노동을 지속하다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그리고 코스트코 대표는 직원 빈소를 찾아 “병을 숨기고 입사한 것 아니냐”는 망언을 내뱉었다. 박원순의 성폭력을 비호하고 피해자를 지목해 ‘거짓말 쟁이’라고 낙인찍으며 2차 가해를 양산하는 내용의 적나라한 다큐멘터리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자유’를 들먹거리는 이들이 규율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어떤 룰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한 사회에서 동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징후들,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방향을 알 수 없는 분노가 넘쳐 나지만, 이를 연결하고 조직을 만들어 가기 위한 운동은 보이지 않는다. 권리와 권한 그리고 가치들에 대한 오남용이 넘쳐나는 시대, 무책임한 책임자들과 시스템이 부재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어떤 합의를, 어떤 규칙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어디서 그 희망과 기대를 조직해 나갈 수 있을까.

청년유니온 위원장 (tjfrla3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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