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통계청이 지난달 25일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 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다음날 이를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4면에 “고령층 경제활동참가율 60% 돌파 … 73세까지 근로 희망”이란 제목으로, 한겨레도 14면에 “고령층 68% ‘73살까지 일하고 싶어’ … 평균퇴직은 49.3살”이란 제목으로 비슷하게 보도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55세 이상 우리나라 고령층은 73세까지 일하기를 희망하지만, 이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50세쯤에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한다. 일하길 희망하는 나이와 퇴직하는 나이 사이에 23년의 격차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73세까지 일하길 희망만 하는 게 아니다. 실제 그 나이까지 노동시장을 떠나지 못한다. 나이 오십에 퇴직하지만 이들이 받는 연금은 평균 75만원에 그쳐 노후보장이 안 되니 자연스레 73세까지 일해야만 먹고산다.

든든한 동앗줄 같은 대기업이나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지만 나이 오십에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대부분 노동자가 노후에 구하는 직장은 대리운전기사나 아파트 경비원, 청소노동 같은 열악한 일자리일 수밖에 없다. 그 불안한 일자리에서 무려 23년을 더 보내야 비로소 노동에서 해방된다.

국민연금의 낮은 소득보장률 때문에 한국 노동자들은 일흔이 넘도록 노동시장에 머무른다. 우리 언론은 중장년을 넘어 고령층까지 노동시장에서 버티는 바람에 청년 노동자들 일자리를 이들이 다 장악한다며 세대갈등을 부추겨 왔다. 우리 언론은 노동의 질과 양에서 양자 사이 갈등할 일이 별로 많지 않다는 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듣지도 않고 세대갈등 담론을 주되게 설파했다.

굳이 이번 통계청 발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가운데 실질은퇴연령과 공식은퇴연령의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소문 나 있다.

실질은퇴연령은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빠지는 나이를 뜻하고, 공식은퇴연령은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말한다. 뉴시스가 2017년 4월2일 보도한 “한국, 실질은퇴연령 OECD 국가 중 가장 높아”라는 제목의 기사에 따르면 한국 노동자들의 실질은퇴연령이 남성 72.9세, 여성 70.6세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국가 평균 실질은퇴연령은 한국보다 10년 정도 젊은 64세쯤이다. 이번 통계청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다.

결국은 돈 때문에 노동시장에 머문다. 이번 발표에서도 고령층 대다수가 더 일하려는 주된 이유를 ‘생활비 때문’이라고 답했다. 덕분에 고령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0.2%로 전체 평균치와 큰 차이도 없다. 이건 분명 비극이다.

나이 오십에 직장에서 쫓겨나 월 75만원 받고 죽을 때까지 살 순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거다. 노후에 받을 국민연금만 넉넉하다면 일흔 넘어서까지 노동시장에 남을 이유가 없다. 연금개혁을 국정 최대 과제 중 하나라고 천명한 윤석열 정부가 이를 제대로 알고나 연금개혁 내용을 채웠으면 한다. 입만 열면 세대갈등에 기대는 언론도 조금 더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번 통계청 발표를 보고 거의 모든 언론이 73세까지 일하길 원하는 높은 실질은퇴연령을 지적했는데 조선일보만큼은 통계를 참 ‘신박하게’ 해석해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6일 경제섹션 2면에 “55~79세 취업자 900만명 첫 돌파”라는 기사를 실었다. 아무리 언론이 ‘최초’병 환자라지만, 이게 무슨 자랑이라고 ‘첫 돌파’란 제목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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