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소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

텍스트 기반의 대화형 인공지능 모델인 챗GPT는 말 그대로 ‘범용 기술’이다. 1930년대부터 발전을 거듭하던 디지털 정보는 현재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됐고 과학의 모든 영역과 경제의 모든 부문에 걸친 영향을 미치면서 광범위한 부문에 활용되고 있다. 챗지피티가 과거의 디지털 기술과 다른 점은 단순히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과물을 창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로챗지피티(Law 챗지피티)를 접한 적이 있다. 법률 부문에 초점을 둔 텍스트 기반 인공지능이다. 하비(Harvey)라는 챗지피티도 법률 부문 특화 인공지능이다. 영국의 한 대형 로펌 알렌 앤 오버리(allen & Overy’s)는 하비를 도입해 간단한 질의 내지는 의견서, 고객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작성하는 등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43개 지사에서 일하는 3천500여명의 변호사가 하비를 이용하게 됐다. 흔히 말하는 전문직종에 파고든 인공지능의 파급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는 기존 변호사 10명 중 1명만으로도 충분히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지식노동자뿐만 아니라 예술가와 일반 노동자들에 대한 파급력도 대단할 것이다. 지금은 피부에 와닿지 않더라도 3년 후에는 고용충격이 올 것이다. 그동안 기술 발전과 적용이 가속화될 것이고 현재보다 더 강력한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이다. 또 새로운 인공지능 시스템이 등장할 것이다. 이것을 ‘4차 산업혁명 팬데믹’이라고 하겠다. 지금 우리는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다.

과거 제조업 위주의 대량생산 산업구조에서 생산·유통수단과 소비자·노동자가 분리된 종속노동이 고용의 대표 격이었으나 플랫폼노동이 등장하면서 누구든지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생산과정 대부분을 자동화할 수도 있다. 하나의 사업장에 종속된 노동자보다 불특정 다수의 수요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독립적으로 제공하는 노동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업무수행 방식에도 더 많은 자율성이 부여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지금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을 흔든다. 자신의 노동을 주된 수단으로 생활하는 이른바 ‘독립 노동자’ 범주까지 근로기준법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개념과 그에 따른 판례 법리는 전통적 노동에 기반하고 있다. 법리가 진화하고 있지만 입법부의 법 개정이 없는 이상 한계는 명확하다. 독립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의 주를 이룰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근로기준법으로 보호할 수 없는 근로자들이 생겨날 터인데 지금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몇십 년 후에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호 대상인 특수고용 직종을 하나둘 추가하는 방식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와 디지털 윤리, 차별 금지와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 등을 보장하기 위한 ‘인공지능 윤리와 규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유사한 결정을 내리거나 예측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누구에게 돌려야 하는지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정의할 필요도 있다. 특히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의 책임을 정하기 위한 ‘인공지능 책임법’ 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학계, 산업계, 시민단체 등의 협력이 필요하다.

앞서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 발전과 에너지·산업전환을 위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15조에 근거해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곳에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없었다. 이들의 참여를 배제하고 재계 인사와 전문가를 전면 배치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산업 대전환의 시기를 대비해 ‘인공지능’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협의회 출범이 필요하다. 협의회의 주된 업무는, 각 산업 분야의 법률과 기준을 재정비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시민·사회단체 참여를 ‘의무화’하고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들의 의견이 반영된 계획안을 도출하는 게 중요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