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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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달력을 보면 설렌다. 1년에 딱 하루, 8월14일 택배 없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8년차 택배노동자다.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 무거운 짐을 몇 차례 옮기고 나면 온몸이 금방 땀으로 젖는다. 제일 곤란한 건 식사 때다. 식당에 들어서면 온몸에서 나는 땀 냄새에 이만저만 민망한 게 아니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밥때를 놓치거나 겨우 들어간 식당에서도 허겁지겁 밥을 욱여넣고 나오기 일쑤다.

이럴 때 ‘휴가철 인파가 ○○○로 몰린다’ ‘인천공항 최대 인파, 본격 휴가철’ 같은 뉴스를 접하면 나도 남들 쉴 때 같이 쉬어 봤으면 싶은 생각이 든다. 하필 휴가철이 방학과 맞물린 아이는 “아빠 우리는 여름휴가 어디로 가?”라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제대로 여름휴가다운 휴가 한 번 떠나지 못했던 아이에게 미안함을 피할 수가 없다.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휴가를 가려면 내 물량을 동료에게 맡겨야 한다. 택배물량은 넘치는데 휴가 가고픈 택배노동자들은 많으니 동료들끼리 눈치작전은 소리없는 전쟁터를 방불케한다. 그러면 가뜩이나 더운 날 내 물량을 맡기면서까지 휴가를 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수없이 교차한다.

그런데 3년 전부터 변화가 생겼다. 2021년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서 8월14일이 택배 없는 날로 지정됐다. 시스템이 개선되면서 수많은 택배노동자 삶의 질도 달라졌다. 그간 아버지 살아생전 동생가족과 함께 휴가 한번 가지 못한 게 가슴 한편에 남았는데 택배 없는 날이 생긴 이후 마음만 먹으면 가족휴가쯤이야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

지난해도 나는 가족들과 같이 계곡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떠나기 전부터 온 가족이 설레며 텐트를 챙기고 마트에서 삼겹살을 살지, 돼지목살을 살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바로 ‘소확행(작지막 확실한 행복)’이라고 느꼈다. 딸아이와 조카는 어느새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물놀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바닷가에서 하루, 계곡에서 하루 이틀간 정말 알차게 휴가를 보냈다.

올해도 우리 가족은 여름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몸이 조금 불편하신 어머니 의견을 제일 먼저 물어보고 딸아이와 조율 중이다. 워터파크에 갈지, 좀더 멀리 여행을 떠날지 가족회의를 열어 의견을 모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여름휴가가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몇 년 동안 단 하루도 허락될 수 없었던 무엇보다 간절한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현장에는 나보다도 힘들게 일하고 어쩌면 8월14일 하루도 쉬지 못하는 택배노동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요즘처럼 불쾌지수가 올라가고 푹푹 찌는 여름철, 휴가 후 쌓여있을 택배 물량에 잠시 잠깐 한숨도 나올 테지만 가족들과 달콤한 휴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재충전이 되고, 힐링이 된다. 그래서 오늘도 “행복을 배달하는 행복배달부로 열심히 하자”고 나를 다독거리면서 뜨겁고 치열한 그 삶의 현장에 나를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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