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거세’(去勢)라는 말에는 인간답게 사는 데 필수적인 것을 제거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거세라는 말 대신 ‘중성화’(中性化)나 ‘무성화’(無性花)라고도 한다. 표현은 다르더라도 그 뜻의 핵심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는 힘, 즉 생명력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최근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와 관련된 국제기준과 해외사례를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비교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비교할수록 생각나는 개념이 정치적 거세 혹은 정치적 중성화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폭넓게 보장된다. 공무원과 교원을 시민으로 국가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한 국민적 기본권과 시민적 권리들이 평등하게 차별 없이 보장된다.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공무원과 교원에게 국민적 기본권을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공무원과 교원은 상당한 범위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를 누리고 있다. 연방정부 공무원에게는 개인적 활동과 직무상 의무를 뒤섞지 않는 조건으로 “광범위한 당파적 정치활동”이 허용된다. 당파적 정치활동이란 “정당이 선출하거나 지명하는 정치적 직위를 위한 후보와 정당의 성공 혹은 실패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행위, 그리고 당파적 정치단체의 성공 혹은 실패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위”를 말한다.

연방행정부 공무원은 “근무시간에, 근무지 안에서” 당파적 정치활동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근무지의 자원(컴퓨터, 이메일, 휴대전화 등)을 당파적 정치활동에 이용해서도 안 된다. 이를 돌려 말하면, 근무시간이 아니고 근무지 밖이라면 개인 소유의 자원과 수단을 이용하여 당파적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연방행정부 공무원은 정당의 정치기부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정치헌금도 낼 수 있다. 당연히 정당에 가입하여 전당대회 대의원 같은 당역을 맡을 수 있으며, 후보와 현안에 대해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주정부 공무원도 연방정부 공무원과 대동소이한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누린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대민접촉을 직접 하지 않는 업무를 하는 공무원이 정치구호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도 있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나라에서는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금지된다. 공무원과 교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도 없다. 또한 개인 돈으로 정치기부금조차 내지 못한다.

인도에서는 공무원이 정당의 당원이나 정치단체의 조직원이 될 수 없다. 또한 정치적 운동이나 활동에 어떠한 형태로든 원조나 지원을 할 수 없다. 공무원은 각종 선거에 관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으며,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지도 표현해서는 안 된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하는 나라와 이를 금지하는 나라 사이에서 ‘중간의 길’을 가는 나라도 있다. 보장도 아니고 금지도 아닌 가운데의 길, 즉 공무원과 교원의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기본권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나라로는 일본이 있다.

일본 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를 제한하는 조항이 있다. 이에 근거한 인사규칙을 통해 정치적 행위가 제한받는다. 하지만 일본 공무원법에도 공무원의 정당가입을 금지하거나 정치적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조항은 없다. 따라서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있으며, 당비나 정치자금 등의 정치적 기부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공무원노조 활동 일환으로 정치적 목적을 가진 문서를 만들어 근무지의 컴퓨터를 이용해 다른 직원들에게 배포한 공무원에게 ‘계고처분’이 내려진 사례가 있다. 일본에서 공무원 징계처분은 면직·정직·감봉·계고 4단계가 있는데, 계고는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다.

대한민국의 국가공무원법 65조1항은 “공무원은 정당이나 그밖의 정치단체의 결성에 관여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정당 결성을 넘어 정당 가입 자체도 금지한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공무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나라는 몇 개나 될까.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대한민국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이 입만 열면 “자유”를 외치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공무원과 교원은 자유주의적 기본권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와 정당 가입조차 금지당하고 있다. 정치적 중성화의 산물인 복종과 침묵을 통해 지배 카르텔에 복무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온라인용)-----------------------------

자유와 권리의 관점에서 대한민국 공무원의 현실을 ‘민주공화국의 공무원’이라 평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일본 본토에서 파견 나와 식민지 관리를 보조하기에 급급했던 조선총독부의 고용원 신분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아시아노사관계(AIR) 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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