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유경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

지난 24일 한 모바일 게임의 일러스트레이터가 ‘페미 논란’에 휩싸였다. ‘페미 논란’이란, ‘페미니스트일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로 보이는 여러 정황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는 상황’을 의미한다. 해당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해 ‘페미 논란’이 불거진 이유는 (일부 커뮤니티의 게시글에 따르면) ①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혜화역 시위 등 젠더 이슈에 관련된 해쉬태그를 올린 트위터리안 몇이 해당 일러스트레이터를 태그했고(일러스트레이터의 의사와는 무관하다) ② ‘여자들의 잇템’이라는 게시글에 ‘좋아요’ 표시를 했으며 ③ 서로 팔로잉을 하는 트위터리안들이 페미니스트이며 ④ 서민 교수의 ‘한남충’ 단어의 유래 설명이나 이화여대의 현수막 사진이 있는 트윗, 낙태죄 폐지에 관한 트윗 등을 공유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 트윗들은 이미 삭제된 상태였으며 구글에 캐쉬 형태로만 남아 있었다.

위와 같은 ‘페미 논란’에 대해 사측이 즉각적 입장문을 발표하지 않자 불만을 품은 몇몇은 게임사에 찾아가 면담을 했다. 사측은 그날 밤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하고 작업물 삭제를 공지했다. 사측의 입장은 ‘직원 개인이 특정 사상을 가질 수는 있지만 사회적 논란이 될 수 있는 개인 SNS에 회사를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남기지 말라는 사칙이 있으니, 물의(페미 논란)를 일으킨 일러스트레이터를 해고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의 게임계 사상검증은 역사와 전통이 있다. 2016년, 게임계에서 활동하는 한 성우가 ‘메갈리아 저장소의 일방적 삭제에 대한 대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참여 사실을 SNS에 올렸다. 그러자 ‘메갈리아’에 대해 반감을 가진 게임 소비층들이 성우에 대해 사이버 괴롭힘을 가했을 뿐 아니라 게임 내에서 해당 성우를 교체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게임사는 그 다음날 성우 교체를 발표했다. 이것이 소위 ‘메갈 사냥’으로 불리는 게임계 사상검증의 시작이다.

이 ‘메갈 사냥’은 맨 처음에는 ①‘메갈리아’의 파생 사이트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페이스북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에게 후원한 성우에서 시작했지만 ② 그 성우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거나 성우와 계약을 해지한 게임사를 비판하는 입장을 밝힌 웹툰 작가·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도 전개되었다. 그 후에는 ③ 성우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 작가들마저 메갈 사냥의 대상이 된 상황에 대해 비판적인 작가들에게도 ‘메갈 사냥’이 이루어졌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자 ④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글을 쓰거나,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페미니즘 관련 단체 사이트를 팔로잉만 해도 사냥 대상이 되었다. 나중에는 ⑤ ‘성별을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캐릭터’나 ‘노출이 심하지 않은 옷을 입은 여성 캐릭터’를 그리는 정도로도 ‘메갈’로 몰려야 했다. 많은 이들이 계약에서 잘리고, 작업물을 삭제당했다. 책을 태우고 유생을 묻었던 폭군이, 21세기에 페미니스트 해고와 작업물 삭제를 요구하는 소비자로 현현한 것이다.

2018년 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는 게임계 사상검증 피해자들을 대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2020년 인권위는 진정이 들어온 피해자 6명 중 5명은 용역계약 등의 당사자일 뿐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1명은 기간이 도과되었다는 이유로 진정을 각하했다. 대신 인권위는 의견표명을 통해 ‘메갈 사냥’의 시발점과 전개 상황을 소상히 정리하는 한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콘텐츠진흥원, 게임사에 게임계의 성차별적 문화의 개선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해당 의견표명에서 ‘(사상검증) 피해자들의 작업물을 사용하지 않거나 피해자들과 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것은,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그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로서의 불가피한 판단이었을 뿐’이라는 피진정인(사상검증을 한 게임사)들의 주장에 대해 ‘페미니즘과 관련한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것을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괴롭힘 및 혐오 대상이 되고 다수의 집단행동에 의해 사실상 직업수행에 있어 불이익을 받는 것은 부당한 일’이라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2023년이 됐지만 더 나아진 것이 없다. 게임이나 일러스트레이터, 개발진 등에게 불만이 생기면 일단 과거 SNS부터 뒤지기 시작해서 팔로워(구독자)와 팔로잉(구독) 목록, ‘좋아요’ 표시를 한 게시글, ‘리트윗(재게시)’을 한 게시글을 긁어내어 그중 하나라도 ‘페미’ 같은 것이 있으면 들이밀며 당장 ‘페미’를 잘라내야 한다는 요구가 너무나 천편일률적이고, 그 요구를 수용하고 있는 회사의 모습도 그대로다. ‘게임은 남성이 주 소비층’이니 ‘당연히 남성들의 입맛에 맞춰야’ 하며, 따라서 ‘페미는 잘라야’ 한다는 논리조차 그대로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게임의 소비자는 여성이 절반에 육박한 사실, 주 소비층이든 아니든 그의 요구가 부당하다면 그것을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 모든 남성들이 페미니스트를 해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어디로 실종되는 걸까.

덧붙여 ‘사칙을 위반해서 해고한 것이지 사상검증을 한 게 아니’라는 주장에도 한 마디 적고자 한다. 기업이 취업규칙을 제정하고 그로써 근로자의 자유를 일정 부분 제한할 수도 있지만, 취업규칙은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을 포함한 상위법령에 위반될 수 없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취업규칙 조항은 근로기준법 96조1항에 위반되어 무효이고, 그러한 조항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 처우를 한다면 이 역시 위법하다(대법원 2018. 9. 13. 선고 2017두38560 판결). 이번 사건에서 문제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SNS 계정은 입사 전부터 사용하던 계정이었다. ‘페미 논란’의 근거로 제시된 게시글도 입사 전 게시글들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닉네임은 인지도와 직결되기 때문에 닉네임을 쉽게 변경할 수도 없다. 그런데 닉네임을 토대로 개인의 프로필을 특정하고 SNS의 삭제된 게시글까지 긁어모아 그의 사상을 운운하며 사회적 논란을 만들어 내기만 해도 해고가 가능하다는 사칙이 있다면, 과연 그 사칙이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에 합치된다고 볼 수 있는지 몹시도 의문이다.

필자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1명의 웹툰, 웹소설, 게임업계 당사자들을 만나 사상검증에 관한 직간접적 경험을 인터뷰하는 연구를 2명의 변호사들과 진행했었다.(범유경·강은희·이도경 ‘디지털 플랫폼 콘텐츠 창작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연구’<공익과 인권> 통권 22호, 2022)

인터뷰 말미에 ‘더 하실 말씀 있나요?’라고 물으면, 많은 인터뷰이들은 연구자들에게 왜 이 연구를 하게 됐는지 질문하거나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페미 논란’을 주장하고 ‘메갈 사냥’을 시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쉽게 과대대표 되는 동안 정부와 사측은 구조를 요청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까지 게임사들은 사상검증을 해달라는 부당한 요구를 용인할 것인가. 언제까지 창작노동자들은 들어줄 사람 없는 진공 속에서 끝없는 공포와 자기검열에 시달려야 하는가. 이제는 사상검증 피해자들의 작업물이 아니라, 부당한 요구를 잘라내야 한다.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이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소식을 더는 듣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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