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Environmental·Social·Governance)경영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중심으로 글로벌 규범이 강화하고 있고,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ESG 정보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ESG경영은 아직 대기업을 중심으로 보고서 발간에 급급한 수준이다. 홍보에 열을 올리지만 내용은 없는 ‘ESG 워싱’ 비판을 받는 이유다. 기업은 ESG 철학이 부족하고, 노동계는 관심이 부족하다. 이런 가운데 산업정책연구원이 노사가 함께하는 ‘노사협력 ESG경영자 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연구원은 현재 노조 집행부와 노사관계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5기 교육과정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산업정책연구원에서 김영기(68·사진) 원장을 만났다. 김 원장은 LG전자 부사장과 LG그룹 CSR팀 부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대한산업안전협회장과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이사장을 거쳐 2021년 5월 산업정책연구원장에 취임했다.

지속가능 사회 달성 위한 수단 ESG

- 연구원이 ESG에 주목하고, 노사협력 ESG경영자 과정을 개설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LG전자 부사장 시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추진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LG전자 HR 최고책임자로 일할 때인데 노조와 함께 벤치마킹을 위해 외국에 다녔다. 미국 등 많은 곳을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간 곳이 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북유럽 3국이었다. 이들 3국은 인권·투명지수·인재육성 등이 세계 톱인 강소국이다. 거기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공부했다. 그것을 통해 2010년 1월 LG전자노조가 스스로 책임 있는 노조가 돼야 한다며 노조의 사회적 책임(USR)을 선포하기도 했다. 인류의 숭고한 목적이 뭔가. 더 나은,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것 아닌가. 나만이 아닌 우리 후손을 위해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유엔은 2000년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이어 2015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제시했다. 빈곤종식·기아종식·성평등·양질의 교육·지속가능 도시 등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목표로 구성됐다. 이것이 2030년까지 유엔이 추진해야 하는 목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점검 수단이 ESG다. ESG는 목표가 아닌 방법이다. 책임 있는 투자 선언시 ESG를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ESG경영이란 말이 생겼다. 하지만 위에서 전략적 차원에서만 ESG를 말한다. 구성원들이 잘 모른다. 반쪽짜리다. 구성원에서 가장 힘 있게 움직이는 것이 노조다. 노조가 힘을 합쳐 ESG라는 수단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노사가 함께하는 ESG경영자 과정을 운영하는 이유다.”

- 연구원이 운영하는 ESG경영자 과정은 노사공동 실행의지를 강조하고, ESG 중 S 영역을 중심으로 이론과 실제 사례를 살펴 실무와 결합할 수 있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국내에 ESG를 다루는 대학이나 기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다른 기관의 ESG 교육과 비교할 때 어떤 강점과 차별점을 가지고 있을까.
“맞다. 고민 끝에 노사문제를 함께하는 차별 포인트를 만들자고 했다. 가장 큰 차별성은 노조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노조와 파트너인 경영자가 함께 모여 ESG를 공부해서 스스로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S에 포커싱을 했다. E는 정량적이다. 이미 정부와 글로벌 차원에서 지표도 나오고 공시기준도 나와서 점검하기가 쉽다.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S는 다양하고 게다가 정성적 지표다. 어디까지가 S냐, 어떻게 측정할 거냐. 측정도구가 만만치가 않다. S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은 사람에 관한 것이다. 인권 문제를 깊이 조명하고 싶었다. 성별·종교·언어·피부 등 많은 차별을 폐지해야 한다. 구체적 지표로 나오는 것이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다. 미국 대기업에서는 DEI 보고서를 만든다. 노동에서는 근로조건·안전·보건·교육·훈련 등이 다 이뤄져야 한다. 인공지능(AI)·자동화 시대 현장근로자는 재교육 등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것을 커리큘럼에 녹여 내고 있다.”

ESG 외형적 성장했지만 내실 부족

- 대기업 위주로 ESG경영 선포, 전담조직 구성, 홍보·사업추진, ESG위원회 설치를 하고 있다. ESG 워싱, S 소외 같은 문제점도 존재한다. 한국의 ESG경영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하나.
“기업이 존재하는 한 CSR은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CSR이 사회공헌으로 잘못 정착한 점이 있다. ESG도 CSR을 잘하기 위한 도구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CSR도 안 하고 ESG로 와서 혼란이 있다. CSR을 제대로 한 회사는 ESG도 제대로 할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외적으로만 ESG를 다루고 근본 변화를 못 만들어 내는 면이 있어 자칫 ‘워싱’으로 볼 수도 있다. ESG 열풍에 외형적 발전은 있지만 내실을 갖추기엔 갈 길이 멀다.”

- ESG경영자 과정은 노사협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S 분야에서도 ‘노동’ 분야는 취약하다. 노동계는 평가방식이 제각각이고, 평가에 노동당사자가 참여하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ESG경영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환경이라면 ‘노사협력’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을까.
“그럼에도 우리는 EGS를 해야 한다. 노조와는 신뢰가 없으면 대화조차 안 된다.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 지속적 대화와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현실이 보일 것이고, 함께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 도출되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실행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노사협력 ESG경영자 과정은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이 후원한다. 현재 4기까지 이어 왔는데 수료자 중 노동계와 재계 비중이 3 대 7 수준이라고 한다.

“제가 한국노총과 한국경총 지도부를 만나 우리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하고 협력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한국노총과 한국경총에서 1명씩 교육에 참여하게끔 했지요. 첫 단추는 노사가 함께 배우자고요. 갈등이 적은 것부터 같이 신뢰를 쌓아 가자고요. 4기에서는 삼성전자 사원대표와 노무부서장이 같이 참여해서 새로운 경험을 했지요. 작은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렵지만 그런 시도를 계속해야 합니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ESG는 노동환경 개선에 도움 된다

-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이중구조, 불평등, 산재, 고용불안, 직장내 괴롭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노조 조직률 14.2%에 속하지 못한 미조직·비정규직을 위한 이해대변기구도 부족하다. 디지털 전환·기후위기에 따른 일자리 위기도 심각해지고 있다. ESG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까.
“단연코 도움이 된다. ESG를 통해 풀어야 한다. 내실 있게 접근해야 한다. 보여주기식으로 쓰면 안 된다. 실질적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접근해야 한다. 근로자들의 삶의 질 향상에 관점을 두고 해야 한다. 수출기준에만 맞추기 급급하면 기본은 할지 몰라도 그 이상으로 향상하기는 힘들다. 노동지표 개발이 안 됐지만 가져다 쓸 지표도 많다. ISO 26000(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표준)에서는 지배구조·노동·환경·공정거래 등의 지표가 다 있다. ISO 30414(국제표준 HR 보고서 가이드)에도 다 들어가 있다. 그런 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

- EU와 미국 중심으로 ESG 규범이 강화하고 있고, 국내 기업도 그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급망 실사 강화로 ESG는 원·하청 모두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하청업체나 중소기업까지 적용되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어려운 상황이다. 글로벌 규범이 만들어져 작동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두려움을 느낀다. 대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은 역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국제적으로도 새로운 규범을 만드는 데 있어 많은 논란을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조율해야 할 것이 많다. 강의 때도 이야기한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한 말인 ‘천천히 서둘러라’. 형용 모순인 말이지만, 글로벌 기준을 천천히 하나하나 챙기면서 가되, 마냥 기다릴 수 없기에 그걸 가져다 꾸준히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면 내년엔 2단계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그만큼 CEO 역할이 크다.”

강화하는 ESG 국제규범, 정부 지원 필요

- 최근 국회에서 ESG기본법 제정 움직임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ESG기본법이 필요하지만 규제법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정부는 기업이 ESG를 잘하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K-ESG(한국형 ESG 가이드라인)를 잘 만들었더라. 기업이 가져다 잘 쓰도록 해야 한다. ESG기본법은 필요할 것 같다. ESG 관련 업무가 60여개 부처와 기관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통합이 필요하다. 정부가 ESG 전문가를 육성해 중소기업에 파견 보내거나 교육 지원을 해야 한다. 공급망 실사, 탄소국경세 등 전 세계적 트렌드를 잘 녹여 내 우리 현실 맞게 만들어 주는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다만 정부가 주도하려고 해선 안 된다.”
 

- ESG경영자 과정 5기를 모집하고 있다. 기존 과정과 어떤 차별성이 있나. 교육 참가자들이 가져갈 최대 성과는 무엇이 될까.
“4기까지 오면서 가장 큰 성과는 노조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 노조에 ESG를 전파할 수 있었다는 것, 노사가 함께 ESG를 공부하고 함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실제 교육과정에서 노사가 회사의 문제점을 함께 찾고 해결하려고 했다. 또한 해외과정을 통해 시야를 넓혔다. 국제노동기구(ILO), 세계보건기구(WHO), 유엔협회세계연맹(UFUNA) 등을 방문했다. 유엔에서 왜 SDGs를 만들었는지 글로벌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5기에는 ‘노사협력 ESG 실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 노사협력에는 어떤 항목들이 있고, 우리는 어느 수준에 와 있는지, 6개월 또는 1년 뒤 어느 수준까지 갈 수 있는지 등을 도출하고자 한다. 현재 ESG 전문가와 함께 연구진을 꾸린 상태다. 이런 실천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현장에서 가서 점검해 보자는 것이다. 노사가 함께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자사 노사협력 ESG를 점검해서, 개선 포인트를 찾아 주자는 취지다. 한마디로 ‘건강 체크’다. 노사협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더 고민이 깊어지는 단계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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