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교조는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 앞에서 전국교사 긴급추모행동을 열었다. <전교조>

“저도 올해 5년차로 고인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저경력 교사입니다. 고인처럼 교육행정정보시스템(나이스) 업무를 지난 4년간 맡아 왔고, 올해 초 저도 학급 안에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와 고인을 포함한 많은 현장에서는 신규·저경력 교사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상황들이 펼쳐지는 때가 많습니다. 학교 현장이 변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광통교에서 열린 ‘전국교사 긴급추모행동’에서 김건 전교조 서울지부 청년위원장은 “고인의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뒤이어 발언한 경남 진주 수곡초의 김은비 노조 경남지부 청년위원장도 “학부모의 연락으로 인해 불안했던 나날이 내게도 있었다”고 공감했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등교사 A씨에 대한 추모 물결이 23일로 5일째 이어지고 있다. 고인 죽음의 배경과 원인은 경찰이 조사 중이지만 교내에서 각종 민원과 요구로부터 ‘고립된’ 교사의 지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모든 것이 담임의 책임, 공동체는 없다”

경기도에서 7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는 고교 교사 윤아무개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교내에서 발생한 문제는 무엇이든 담임의 책임이 된다”며 “공동체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려는 교내 문화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지각한 아이들의 이름을 칠판에 적거나 청소를 시켜도 아동학대가 되는 상황에서 어떤 교육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민원 등이 발생해도) 전교조 등 교원노조나 단체에 가입해 스스로를 보호할 뿐 학교나 교육부, 교육청 차원의 대응은 없다”고 토로했다.

사람들을 만나는 감정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41조 일명 ‘감정노동자 보호법’을 통해 보호받는다. 사업주는 관련법에 따라 고객의 폭언, 폭행과 같은 행위로부터 감정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수십명의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는 교사는 어떨까.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에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근거가 마련돼 있다. 교원지위법 15조에 따라 학생이나 학부모가 교사의 교육활동을 침해할 경우 학교장은 교사에게 치료와 심리상담 등의 보호조치를 해야 한다. 17개 시·도 교육청은 교원치유지원센터를 설치해 교원들의 상담과 소송 비용 등을 지원한다.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를 한 학생에게 사회봉사나 전학 처분을 내리도록 결정하고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시책을 수립하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 수도 있다.

“선생님인데 사명감으로 견뎌야” 여전한 인식

교사의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여러 제도가 있지만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교사는 매우 취약해진다. 해당 교사가 교육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신고가 들어올 경우 경찰과 검찰이 수사에 나서고 이 기간 모든 책임은 교사 개인에게 떠넘겨진다. 교사를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해 고소·고발돼 수사를 받은 사례는 최근 5년간 1천252건에 이른다. 이중 절반 이상(53.9%)이 증거없음 등으로 불기소·종결 처분을 받았다.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10조는 ‘누구든지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 신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의심만으로도 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최종 무혐의 처분이 내려져도 고소인이나 신고자를 무고로 처벌할 수가 없다. 무고죄가 없어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에 속수무책으로 내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원치유지원센터에서 교육활동으로 인한 아동학대 쟁송이 발생하면 소송비용을 지원하지만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간 소송지원은 31건에 불과했다. 일부 교육청은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 교권침해 결정을 받아야 소송비나 상담비, 치료비를 지원해 과정과 절차가 복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씨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요구하는 교사를 ‘유난 떠는 사람’으로 치부한다”거나 “교육활동 침해 학생을 신고해도 미미한 처분에 그쳐 학생들도 ‘누구도 나를 건드리지 못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김성천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은 “언론사의 경우 기사에 문제가 발생하면 회사 차원에서 대응을 하지만 교사는 변호사를 구하는 일부터 본인이 감내하는 일이 많다”며 “교육청이 상담을 지원하지만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도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 인권 때문에 교권 침해? “책임 면피 프레임”

교육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분쟁을 전담하는 기구 설치나 전문가 배치를 권고한다. 전교조는 시·도 교육청에 아동학대 전담기구를 설치하고 아동학대전담 공무원을 배치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참교육학부모회와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공동 성명에서 “저경력 교사를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아동학대 사안의 경우 학교마다 분쟁조정 전문가를 배치하고 자문 변호사가 사건에 적극 대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라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될 경우 신고당한 교사는 학생과 즉시 분리되기 때문에 담임교사가 부재한 상황 등이 발생한다. 해당 사건이 긴급한 아동학대 사건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교육청 내 산하기구 혹은 전문가가 개입해 아동학대 여부를 판별하고 학부모와 교사, 학생 간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학생들의 권리가 지나치게 높아 교사의 권리가 추락했다는 논리를 편다. 지난 21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한국교총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학생의 인권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우선시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땅에 떨어지고 교실현장은 붕괴되고 있다”며 “학생인권조례를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성천 소장은 “(이번 비극뿐 아니라) 지금까지 제기된 교육권 관련한 문제의 책임은 교육청과 교육부, 제도적 정책적 대응을 만들지 않은 이들에게 있다”며 “원인을 인권조례나 진보적 교육감으로 돌리는 것은 책임을 빠져나가려는 자들의 프레임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교사를 보호해야 할 교육당국의 책임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고 있다는 비판이다.

교육부·서울시교육청 등은 5명 내외의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24일부터 27일까지 4일 동안 집중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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