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희(산업노동정책연구소 소장)

최소 500만명 이상(23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기준 영향률 16.4%, 약 350만명 특수고용 등 저임금의 비임금 노동자 포함)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의 임금협상인 2024년 최저임금이 시급 9천860원으로 결정됐다. 23년보다 2.5%(240원) 인상돼 2021년 팬데믹 상황에서의 1.5% 인상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낮은 인상률이다. 그다음으로 낮은 2%대의 인상률로 결정된 해는 세 차례다. 문재인 정부 출범 2년간 두 자릿수 높은 인상 후 하향 조정한 2020년 2.87%,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10년 2.75%, IMF 경제위기 때인 1998년 9월~1999년 8월의 2.7%다. 팬데믹도, 글로벌 금융위기도, IMF 위기도 아닌데 더 낮게 결정됐다. 물론 최저임금 수준이 예전보다 높아졌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하겠지만, 물가상승률 예상치 3.3%보다 낮아 실질 최저임금이 삭감된 것은 자명하다. 경제위기 시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담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그런 경제위기는 아직 예견도 분명치 않다. 2.5% 인상률은 경제 상황을 반영한 게 아니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표를 염두에 둔 정부·여당의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기획재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서 제시한 거시지표는 경제성장률 1.4%, 물가상승률 3.3%다. 소득분배를 악화시키지 않고(성장률만큼 인상), 실질임금을 유지(물가상승률만큼 인상)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4.7%(1만546원) 수준이다. 926원은 인상했어야 했다. 지난해 12월21일 기재부가 발표한 2023년 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률 전망치(1.6%)와 소비자물가 전망치(3.5%)를 합한 수치는 5.1%였다. 경제전망은 변한다고 하지만, 하향 조정된 수치가 발표된 것이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익위원들이 지난 2년간 적용했던 정체불명과 논리적 모순의 계산식인 취업자증가율 전망치(1.14%)를 차감하면 3.56% 인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경우 올해(9천620원)보다 343원이 인상돼 내년도 최저임금은 9천963원으로 1만원을 밑돈다. 그런데 작년 말 경제전망에서 취업자증가율 전망치는 0.2%에 불과했다. 취업자증가율 전망치(0.2%)를 뺀 4.9%가 최저임금 인상률이다. 이를 다시 올해 최저임금인 9천620원에 대입하면 내년도 최저임금은 1만91원이다. 물론 이 계산식을 인용할 가치는 없다. 경제성장률과 동행 변수인 취업자증가율을 최저임금 적정인상률을 차감하기 위해 동원한 이론적 근거도 없는 정치적 산식일 뿐이다. 그런데 무슨 일인가? 경제성장률, 물가상승률 하락은 그렇다 치는데 취업자증가율 전망치가 0.2%에서 1.14%로 높아졌다. 성장률 전망은 낮아졌는데 6개월 사이 갑자기 고용친화적 성장체제로 둔갑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 시절 매월 고용동향 발표 때마다 노인 단기일자리로 취업자증가율을 높였다고 난리 치던 당시 야당과 보수언론이 생각난다. 고용 증가 추세는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사용자위원의 찬성으로 3년 연속 공익안으로 의결되다가 이번에는 사용자 제시안으로 의결됐다. 공익위원 최종 중재안 9천920원을 민주노총이 거부해서 노사 안 중 표결로 선택한 것이다. 시급 60원은 월급으로 1만4천540원이다. 1년에 15만480원이다.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임금 노동자에게 무시할 만한 액수도 아니다. 사용자 안과 얼마 되지 않는 차이로 중재안을 제시하고, 적은 금액을 얻기보다 노사합의의 결과라는 명분을 안겨주기 싫어하는 민주노총에 책임을 일부 떠넘기는 데 일견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지향적 비판의 정치를 하는 민주노총과 참여 지향적 비판을 구사하는 한국노총의 차이가 드러났다. 그러나 그 차이는 공익위원의 사용자 편향성을 비판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다. 어느 쪽도 선택하기 힘든 선택지에서 한 발짝씩 다르게 움직인 것이다. 공익위원이 중재안을 편향되게 낸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이와 비슷한 문제는 또 있다. 노사 의견이 갈리고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데, 공익위원을 정부 입장의 대변자로 만들어 공정한 중재와 판단은 없고 피로감만 높이는 일은 매년 반복된다. 문재인 정부 때도 결정체계 개편 논의가 있었지만, 어떤 외국 사례에서도 따를 만한 마땅한 모델은 없다.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듯이 노사 참여 속에 결정하는, 그래서 공익위원을 공정한 중재자로 자리매김하는 체제가 바람직하다. 아니면 정부가 직접 최저임금위에 나오는 게 낫다. 공익위원들을 나아가 전 국민의 노동, 임금 학습장인 최저임금 결정 과정을 희화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