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23. 5. 24. 선고 2022나2006988

1. 들어가며
 

유태영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 유태영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지난 5월 24일 서울고등법원은 한국가스공사에서 하청업체 소속 경비대 행정조장으로 근무한 노동자들 5명과 한국가스공사 간의 근로자파견관계를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1심 판결이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던 것과 판단을 달리해 원고들의 항소를 인용한 것이다.

2. 사실관계 및 이 사건의 쟁점

가. 한국가스공사는 경비업체와 경비업무에 관한 용역계약을 체결했고, 원고들은 경비업체에 소속돼 경비대 ‘행정조장’ 직책으로 근무했다. 한편 한국가스공사에는 ‘예비군법’에 의한 직장예비군부대, 그중에서도 ‘중대’가 편성돼 있었다. 2017. 12. 29. 제정된 ‘예비군 조직·편성과 운영에 관한 훈령(국방부훈령 제2290호)’ 제14조 제2항 제1의 나.호, 별표 12 ‘제대별 직장예비군부대 본부요원 편성기준 및 직급‘에 따르면, 예비군중대에는 ’사무원 1인‘을 배치해야 한다.

정규직 근로자인 ‘예비군중대장’은 ‘방호실’에 상주하며 ‘방호실장’으로 지칭됐고, 원고들은 경비대원들이 근무하는 경비동이 아닌 방호실에서 상주했다. 원고들은 한국가스공사로부터 사내 인트라넷상 ‘○○지역본부 방호원’이라는 계정을 교부받았고, 전자문서시스템으로 각종 공문을 기안해서 예비군중대장(방호실장) 등 정규직 근로자들로부터 전자결재를 받았다.

나. 원고들은 한국가스공사의 업무상 지휘·명령을 받으며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피고와의 관계의 실질은 근로자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국가스공사는 경비업체와 체결한 용역계약은 도급계약에 해당하고, 경비업법 제14조 제1항, 제15조 제1항 규정에 따른 시설주로서의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것으로서 사용자의 지위에서 직접 지휘·감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첫째, 기존에 대법원이 제시한 5가지 기준에 따른 근로자파견관계의 인정 여부, 둘째, 경비업법상 시설주에게 부여된 관리·감독·명령 권한의 범위다.

대법원은 ①제3자가 당해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②당해 근로자가 제3자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작업을 하는 등 제3자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③원고용주가 작업에 투입될 근로자의 선발이나 근로자의 수·교육 및 훈련·작업시간·휴가·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지 ④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⑤원고용주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등의 요소를 바탕으로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판단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5. 2. 26. 선고 2010다106436 판결 등 참조).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우선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를 ①용역계약에 따른 경비업무 ②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로 구분한 후, ‘두 업무는 내용과 범위가 다른 별개의 업무’라고 인정했다. 그러고 나서 기존에 대법원이 제시한 5가지 근로자파견관계 판단기준 중 ①상당한 지휘·명령에 관해 한국가스공사가 도급인(시설주)으로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원고들을 지휘·명령할 권한이 있으나, 이러한 지휘·명령은 용역계약에서 정한 경비업무의 범위에 한정돼 이뤄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원고들이 수행한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와 같이 위 경비업무 범위를 넘는 부분에 대해서까지 한국가스공사가 지휘·명령 권한을 갖는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머지 4가지 판단기준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시하면서, 이 사건 소 제기 직전 원고들의 인트라넷을 차단하고 원고들을 대체할 신입 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한 사정, 원고들은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데 핵심적으로 필요한 인트라넷·각종 사무기기·사무용품 등을 모두 피고로부터 제공받은 사정을 들었다. 그러면서 경비업체가 인사상 권한을 행사한 사정은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할 근거로 부족하다고 봤다.

그 결과 한국가스공사와 경비업체가 형식적으로는 경비 용역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에 관한 파견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판단했다.

4. 대상판결의 의미

대상판결은 5가지 근로자파견관계 판단기준 적용에 앞서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해 ①용역계약에 따른 경비업무 ②예비군중대 사무원 업무로 분류했다. 제조업 생산 업무의 경우 ‘자동차 오른쪽 앞문 조립’ 같이 업무 내용을 가시적으로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이 사건 원고들이 수행한 ‘행정업무’는 컴퓨터로 문서를 작성하는 페이퍼워크(Paperwork)로서, 그 내용을 포괄적으로 뭉뚱그려서 유형화·단순화해 설명하다 보면 그 내용이 왜곡될 수 있다. 원심 판결은 원고들 담당 업무에 대해 “행정조장의 업무는 일반경비 및 특수경비업무에 부수해 발생하는 경비 조편성·방호 및 테러·보안·당직·물자점검과 관련된 공문 작성 등 각종 행정사무를 처리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는데, 이는 피고측이 원심에 제출했던 준비서면 기재를 그대로 쓴 것으로서, 원고들이 실제로 수행했던 업무 중에서 ‘예비군·민방위·비상대비’ 등 행정 실무는 제외되는 등 업무 내용에 대해 깊이 있는 심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항소심에서는 피고 직제규정·내부 공문·용역계약 시방서 등을 근거로 원고들 담당 업무를 빠짐없이 유형화해, 원고들이 실제로 수행한 업무가 용역계약 시방서에 포함되지 않는 업무임을 강조했다.

통상적인 용역계약·도급계약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용약계약 시방서 상 역무의 범위도 ‘A·B·C 그 밖에 기타 위 업무에 준하는 사항’ 형식으로 기재돼, 피고는 원고들이 수행한 모든 업무가 시방서상 ‘기타 사업소 방호실 업무지원’ ‘기타 경비업무에 준하는 사항’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피고 주장에 따른다면 도급계약상 업무의 범위가 확정되지 않고 도급계약서상 업무의 범위를 특정하는 것 자체가 현장에서 무의미해진다. 같은 취지에서 대법원도 근로자파견관계의 판단기준 5가지 중 하나로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당해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제3자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는지”를 제시한 것이다.

대상 판결은 원고들이 수행한 업무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한 후 5가지 근로자파견관계 판단기준을 적용하고, 경비업법상 시설주의 지휘·명령의 권한 범위에 대해서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상판결이 향후 경비업·사무직 근로자들의 근로자파견관계에 관한 다른 판결에서도 주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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